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문화재단이 지원하여 임진강 어부와 주변의 생활문화상을 기록한 내용이다.

책 표지 앞뒤

개요

'여기, 임진강 어부'는 임진강의 유래와 특성을 설명하고 17명 어부와 관계자의 채록담이 실려 있다.

이외에도 역사문화자원 현황과 관광문화자원의 활용을 통해 임진강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분석했다.

부록에는 군장병의 임진강 도하훈련과 임진강 풍어제 등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고 어부들의 삶을 채록한 마을연구가들의 후기가 수록됐다.

도서 목차

  • 1장 여기, 임진강
  • 2장 여기, 임진강 사람들
  • 3장 여기, 임진강과 지속가능한 미래
  • 4장 부록

머릿말

파주시는 남서쪽으로는 한강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황해북도 개풍군. 북으로는 경기도 개풍군 및 개성시와 경계를 이루는 등 최북단에 위치 한 탓에 한국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로 인해 지역 곳곳이 민간 •인통제구역으로 이곳에서 생업을 하는 경우 군부대로부터 출입시간에 대한 통제와 사용 장비 등에 대한 제한 등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며 그로 인해 독특한 문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또한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 산맥에서 발원하여 연천에서 한탄강과 합류하여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 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드는 한강의 제1 지류로, 한강을 통해 황해로 흘러드는 임진강은 수중보가 없는 덕분에 연천지역까지도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어 바닷물을 따라 어종이 풍부 하다.

2020년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파주이야기가게의 활동가로 「DMZ 에코뮤지엄 임진강의 마을과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인터뷰하 게 된 청년 어부 박우군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진강 어부는 다른 지역 과는 다르게 군인의 통제를 받아 정해진 구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 으며, 월북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2인 1조로 과거 노를 젓는 배에 서 현재는 북한과의 거리가 가까운 오두산 통일전망대 구간을 제외한 3개 구간에 30마력 미만인 모터를 사용하는 등 지역주민들조차도 모 르고 지나쳤던 과거와 현재의 임진강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었다.

이에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한 연속사업으로써 지리적, 지형적, 치적 특성으로 타 지역과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임진강과 함께 아가는 어부와 지역민들을 주제로 아카이브화하고 지역문화자원으 써 컨텐츠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채록 주요 내용

'여기, 임진강 어부' 채록에는임진강 어업 종사자와 관계자인 김병수, 김순호, 김재천, 류홍천, 문무곤, 박상현, 박우군, 양찬모, 이순찬, 이호구, 임권상, 장석우, 장석진, 전영수, 전종호, 최영선, 황인형 등 17명이 참여했다.

채록 주요 내용에는 개인별 채록 중 처음 시작되는 머릿글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임진리 이장 김병수

나는 3선단, 내포리는 15척, 반구정은 10척, 자유 다리 밑에 자유교라고 있어. 자유 선단은 4척, 우리 3선단은 16척, 다 달라. 여기? 여기는 2선단이지. 여기는 12척이야, 12척에서 패류선 두 척, 조개 채취 를 하는 배. 우리는 예를 들어서 뱀장어 새끼도 잡고 난 장망, 강망 들 어오면 다칠 수가 있어. 모든 거를 할 수가 있는데 어패류가 어디서 실 뱀장어 그물을 쳐 우리가 막는 거지. 그걸 못 하게 하지, 우리가, 제일 시급한 거는 이제 뱃사람들이 나이들 먹고 젊은 사람이 없어....

지금은 한강 어부 김순호

50년대 전쟁 났잖아. 그 49년생 아니야 내가, 한 살 때 거기서 엄 마 등에 업혀서 나온 거지 장파리 건너가 용산인데 거기서 나온 거야. 초등학교 졸업하고 어업을 했어. 6남매 중에 둘짼데, 형님은 어머니가 배워야 된다고 이거를 업으로 살면 안 된다고 해서 공부했지….

40년 경력의 김재천

중간에 이제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처음 시작은 17살에서부터 주 위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까 우연히 한 거지. 사실은, 부모님들이 “너 이 거나 한번 해봐라” 그래 갖고 그게 인연이지 뭐. 처음에는 집이 원래 거기니까 5선단에서 하고 지금은 3선단에서 하는 거지. 3선단이랑 5 선단하고 비교를 하면 군부대 드나 다니는 게 좀 편리하고, 그리고 뭐 다를 게 있나, 뭐 다 거기서 거기에요. 그냥....

황복 치어 양식 류홍천

2009년도 그때부터 황복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했어요. 그전에는 낚시터 하면서 조그맣게 쏘가리도 기르고 붕어도 기르고 그랬었는데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2009년도부터 황복에 손대기 시작한 거죠. 낚시 터에서 고기를 많이 쓰니까. 그래서 고기 키우는 게 쉬운 줄 알고 했는 데, 처음에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자유로 선단장 문무곤

어부 일을 하기 전에는 출판업을 했는데 사업이 힘들어져서 시작했 지. 그래도 벌써 한 20년 됐나 봐. 자유교 선단은 처음에는 없었는데 한 30년 전에 생겼지. 자유 다리 쪽에는 군부대에서 강력하게 못 오게 하다가 이제 그게 완화가 되면서 30년 전에 공간이 좀 남으니까 거기 안에 빈자리가 있으니까 허가를 내서 들어간 거야….

임진강을 지키던 군인 박상현

저는 여기 1사단에서 군생활을 34년 하고 2009년도 9월 30 일에 정년퇴직해서 지금은 임진강변 생태원로 해설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박상현이고 1954년 8월 20일생입니다.

제가 군 생활을 총 34년 6개월을 했는데 6개월은 훈련을 받았고 34년은 제1보병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마치고 1975년도 12월 1사단에 전입을 와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 임진강에서 군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임진강에서 군대 생활을 시작하고 GOP 생활을 1년 하다가 77년도 3월에 다시 나와서 78년도 3월까지 임진강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다가 1사단 신병교육대 교관으로 가게 되죠. 거기서 한 2001년 훈련병 장병을 육성하다가 원사라는 계급을 달고 전방에 이제 지금은 이제 평화관광이지만 옛날에는 안보 통제실이라고 있었어요. 안보 통제실에서 안보 통제실 담당관으 로 근무를 하다가 2009년 9월 30일부로 전역을 해서 현재는 생태탐방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튜버 어부 박우군

맞아요. 파주는 그렇게 있는 거예요. 적성선단(폭파주) 파평선단 (북파주), 2선단, 3선단, 자유교, 4선단, 5선단. 처음엔 저도 엄청나게 헷갈렸어요. 도대체가 선단들이 어디냐고. 지도를 놓고서 보면 현재 북 파주어촌계에 두 개 선단이 1선단이였던 거 같긴 한데 사실 예전에도 1선단이라고는 잘 안 했어요. 나도 여기를 어촌계가 분리되기 전에 왔었는데 다들 그냥 파평선단, 적성선단이라고 했지….

임진강 황포돛배 대표 양찬모

저는 95년도에 처음으로 여기에 도자기 나라라는 도자기 교육장을 운영을 했었어요. 폐교학교에서도 쭉 운영을 했고, 법원읍 오현리 직천 초등학교 거기서 운영을 하다가 2002년도에 임진강에다가 황포돛배를 한번 띄워보자. 네가 젊고 그런 기획서를 좀 쓸 줄 아니 같이 한번 해보자 해서....

임진강집 대표 이순찬

어려서 아기 때 파주로 왔어요. 고향이 청주 내수라고 있어 청주. 고기 잡은 건 한 74년도 그렇죠 10대때 이모님이랑 같이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가지고 이모부도 안 계시고 이모하고 우리 사촌 형이 있 거든요. 형하고 같이 셋이서 했지…

어선단어부 이호구

5선단도 다를 게 없어요. 지금은 옛날같이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 우리는 그 산 밑에 주로 거기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나가 는 사람은 잘 보일 수도 없어요. 크레인 거기가 선착장인데 모르는 사 람들은 위에서보면 뻘만 보이니까 잘 모르죠….

어민협의회 1대회장 임권상

내 고향이 원래는 천현면이에요. 법원읍 거긴데 저희 아버님이 장단이고 여기 고랑포 거기로 들어 가신다고 오다가 여기서 멈 춘거예요. 그래 갖고서는 이제 여기가 제2의 고향이 된 거지.

그래서 이제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집에서 그냥 노인네가 이 고기잡이배를 만드셨어요. 그전에 아버님이 목선도 하고 목재 집지러 다니시고 그랬어요. 우리 집도 아버님이 손수 지으신 거예요.아버님이 어부도 몇 년을 하셨죠. 허가를 내서 그걸 하시다가 노인네가 나이가 있으니 제가 할게요 해서 제가 군대 가기전부터 했어요. 그러니까는 한 18살, 19살 정도 그때부터 이 어업을 한거죠….

북파주 파평 선단장 장석우

이게 뭐냐 하면 장파리에서부터 적성까지는 단독 구간이야 그냥. 근데 이제 임진리에서부터는 2인 1조고, 북파주는 다 1선단이야. 여기가 옛날에는 그냥 파주 어촌계에 이제 여기가 1선단이었어. 1선단 에서 지금 북파주 어촌계로 따로 나온 거고. 나온 거 중에 지금 적성 선단, 파평선단인거고, 자장리하고는 어유지리 거기까지는 적성선단. 바로 위에 여기가면 장자리 고랑포 거기까지는 거의 파평선단이야….

파주어촌계장 장석진

저는 뭐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대로 또 대학 생활하다가 문학 쪽으로 하다가 그냥 일찍 그만두고 이십대 후반부터 그냥 한 삼십년 동안 그래도 고향에 와서 고기잡이하고 있는거죠. 할아버님이 1800년도 말에 새우젓 배들 무역선을 여기서 이제 개성에서 특산물을 싣고 내포리로 갔다가 다시 와서 외포리에 새우젓 싣고 하는 황포돛배 두 척을 가지고 예성강 포구에서 독립을 하셨어요. 혼자. 그때부터 그냥 대대로 어민의 집안이고 여기 나와 있는 거예요. 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 일제시대 때 다 거기 장보고 장군 예성강으로 시제 지내러 가고 다 하셨으니까….

북파주 어촌계장 전영수

그냥 고기만 잡아가지고는 생활이 잘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매운탕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지 않으면 고기 잡아서 도매업이 아니 각 소매업 하는 사람들이 많고 지역은 쉽게 말하면 문산 파주 어촌계 하고 우리 북파주 어촌계라고 이렇게 구분하는 게 사실은 고기 잡는 그런 문제가 어종과도 연계가 많아요….

임진강 시인 전종호

저는 평생 40년 가까이 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이제 퇴직한지 1 년 됐고요. 지금은 이제 마을 늘노리에서 평화마을 짓기 활동을 함께 하고 있고 마을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 살까 함께 어떻게 하면 잘 살 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하나씩 그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낚는 어부 최영선

내가 임진리에 들어왔던 60년대에는 임진강에 철조망이 없었어. 그래도 미군부대에서 어업권을 주니까 아무나 들어와서 낚시하거나 고기는 못 잡아먹었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은 옆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지. 동네 사람들은 수영도 하고 얼음도 타고, 그중에 못된 사람들은 강 건너가서 미군들 막사 털어 오고 먹을 것 막 가져오고 보트, 보트가 아니라 뭐야 튜브, 튜브 이렇게 해가지고 새벽에 건너가서 그 다음날 새벽에 물건 해가지고 거기다 싣고 오고 손으로 이렇게 막 저어가지고. 우리는 알지 저 사람들이 그 사람이구나 그러면 가만히 내비 두는거야….

세개의 선단을 오고 가는 어부 황인형

저는 황인형이라고 하고 작년까지 4선단장이었어요. 임진리 김병수 이장님과 짝꿍으로 함께 조업하고 있어요. 제가 작년에 환갑을 했 는데 스무 살 때부터 어부 일을 했으니까 거의 40년.

고기잡이는 맨 처음에 저희 아버님이 고기를 잡으셔서 도와 드리다가 중간에 안 한다고 나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집이 이제 좀 비게 돼서 모든 걸 정리 해서 집으로 왔죠. 그때도 어업을 주로 한 건 아니고 배를 한 척 구입해서 조금씩 잡다가 축산을 시작해서 소를 키우면서 사료값이나 번다고 생각하고서 어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업으로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한 거는 95년도부터 했어요. 부업으로 시작해서 본업이 돼버린 거죠….

발간정보

도서명 '여기, 임진강 어부'
기획 기억사전
진행

  • 마을연구가 곽지현
  • 마을연구가 이상은
  • 마을연구가 박경란
  • 마을연구가 이미석
  • 마을연구가 남인우
  • 디자인 윤은실

발행일 2022년 11월 25일

관련 정보

여기, 임진강 어부 사진전

전시장 내부

'여기, 임진강 어부' 출간과 함께 기억사진 출판사에서는 2022.11.25.~11.26일 양일간 연풍다락에서 사진전을 개최했다. 사진전에는 도서에 포함된 사진 30여점과 어부 프로필 사진이 전시되고 임진강과 관련된 영상도 상영됐다. 연풍다락 참조 --1pi2022.11.28.


주변 명소



더보기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