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을 중심으로 이용되던 중요 나루터이다.

임진강 황포돛배,사진 파주시

개요

경기북부지역을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임진강臨津江과 예성강禮成江에는 고려․조선시대부터 많은 나루터(渡船場, 津渡)가 있었다.

나루터는 임진강(상, 중, 하류), 조강祖江, 예성강(중, 하류)에 널리 분포한다. 나루와 포구는 여객, 물자, 세곡稅穀을 운반하는데 이용되었다. 근세까지 이용된 강나루, 임진臨津나루에서 출발한 선박은 멀리 내륙 연천, 전곡에 이르는 한탄강 종착지까지 물자(곡식, 해산물, 옹기, 특산물 등)를 운송하고 교환하였다. [1]

위치 고찰

파주에 있었던 나루들은 다음과 같다. 洛河渡는 교하 북쪽 20리에 있으며, 『대동지지』에 의하면 고려시대 남쪽으로 향하는 큰 도로가 이 나루를 통과하였다고 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에 속한다. 탄현면 낙하리에 있었으며, 장단군 장단면 석곶리로 통하였다. 특히 서울과 개성을 잇는 큰 길목이었기 때문에 渡丞을 두어나루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덕진도德津渡는『장단읍지』에 의하면 읍치 동남쪽 10리에 위치한다고 하였는데, 임진도 아래에 있었다. 임진도臨津渡는『대동지지』에 의하면 읍치 북쪽 1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파주시 파평면 율곡 3리의 성황당고개를 지나 화석정 앞에 있었다.

임진도는 임진강유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나루로서 관북과 관서지방으로 갈리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총융청에 소속되어 있었고, 실질적으로는 임진진에서 관리하였다. 장단진長湍津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읍치 동쪽 33리에 있으며, 두기진頭耆津으로도 부른다고 하였고,『대동지지』에는 고량진高浪津으로 기록하고 있다.

문산포汶山津은 문산읍 문산리에 있었다고 한다. 문산의 아래 마을인 하동의 서남쪽에 있었다. 신지강진神智江津은『대동지지』에 의하면 북면과 통한다고 하였다. 여의진如意津은『대동지지』에 의하면 읍치 서쪽 8리에 있으며 장단과통한다고 하였다.

『적성현지』에는 읍치 서쪽 20리 두기진의 하류에 있으며, 장단부가 관할한다고 하였다.梨谷津은『적성현지』에 의하면 읍치 서쪽 7리에 있으며, 장단부가 관할한다고 하였다.

저포진猪浦津은『대동지지』에파주읍치서쪽15리에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임진도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군내면 방목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서 정자리를 지나 백연리에서 임진강으로 들어가는 강가에 있었다.

지금의 문산읍 마정리에서 장단군으로 건너가는 나루로 독개나루라고도 불렀으며, 자유의 다리가 가설되면서 없어졌다.

강연포江連浦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단부의 서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선을 대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 서해의 해산물을 싣고 올라온 선박들이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2] --paki 2024년 2월 21일 (수) 13:41 (KST)


주요 나루터

도감포(都監浦)

한탄강 상류에 있으며 선박 가항可航 종착지에 해당한다. 전곡읍全谷邑 앞에 위치하며 인근에 마포麻浦가 있다. 도감이란 포구의 관리, 질서유지, 감독을 한다는 의미이며 이곳에서 물자가 많이 거래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임을 의미한다.

이 일대의 특산물은 삼(麻), 사기그릇, 한약재 등이며 상인들이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해산물과 맞바꾸었다. 전곡 앞 강변에는 이곳에서 생산된 사기그릇, 도자기를 거래한 소기점沙器店, 삼베를 거래한 마포麻浦가 있었다. 사기그릇 생산지는 남쪽으로 적성면積城面 마지리雪馬里가 있는데 이곳에는 사기막沙器幕(사기굽는 마을) 4곳이 있었고 임진강변으로 도자기를 수송하였다.

장단도(長湍渡)

임진강 본류가 시작되는 고랑포高浪浦를 두기진頭耆津 또는 장단도라 한다. 頭耆(두기)란 ‘둑, 도(갯벌)’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으로서 물가(水邊)를 의미한다. 과거 강원도에서 출발하여 파주를 거쳐 개성방면으로 가는 여행자, 화물은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장단도를 이용하였다. 그 당시에는 경기도, 강원도의 물자가 집합되어 거래되는 물류센터 역할을 한 곳이다.

임진도(臨津渡)

'임진나루'라고도 하며 한양, 개성, 관서지방을 잇는 국도가 지나는 곳이어서 항상 여행자, 화물이 집결하는 곳이고 내항 구실을 하기도 하여 번성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교류하던 루트가 이곳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북방 몽고족, 여진족 그리고 당나라 군대들이 남하할 때 이 나루를 건넜으며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이 북상할 때에도 이 나루터가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이 평안도로 피난을 떠날 때 역시 이 나루터를 건넜다. 이와 같이 인원, 물자의 이동이 많고 전략상으로 이곳을 지키기 위해 이 근처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군사기지 임진성을 쌓았다.

강건너 동파는 여객들이 묵었던 객관, 상점이 있었고 관서지방을 연결하였던 파발역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곳 남쪽 독개(猪浦)구간에 교량이 놓이면서 臨津渡의 존재 의의가 사라졌다.

저포(猪浦)

저포는 이 고장에서 ‘독개’라고 불린다. 장단쪽 강변에 있는 배가 정박하는 포구이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정자포亭子浦, 화장포化莊浦가 있었다. 앞서 임진도와 남쪽 문산포汶山浦 사이에 위치하며 화물을 하역하던 곳이었다.

문산포(汶山浦)

파주와 개성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 곳이며 물자를 하역하는 내항인 동시에 화객을 강 건너로 수송한 나룻배가 머문 곳이다.

낙하도(洛河渡)

오늘날 交河 지역의 임진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 낙하도는 洛河里 앞 강변에 있었다. 강 건너 장단구역 강변에도 낙하도가 있었으며 이곳 북쪽 가까이 德津(큰 나루)과 함께 남쪽에서 북상하는 화객을 개성방면으로 수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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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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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1. 한국관광공사 -개성파주지역 관광개발 타당성 연구 , 2002.12월 / 47쪽
  2. 경기도3대하천유역 종합학술조사1 임진강, 경기도 박물관 학술총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