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르의 절벽 – 김태회
– 100세 시대 인간의 자기 혁신–

100세 시대, 무뎌진 부리와 발톱을 뽑아낼 용기
선천적으로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태어난 콘도르가 수십 년을 사냥하며 생을 이어가다가, 때가 되면 스스로 절벽으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들은 거기서 낡고 무뎌진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부딪쳐 뽑아내는 극한의 고통을 감수한다. 이 고통스러운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들은 새로운 부리와 발톱을 얻어 제2의 비상을 준비한다. 생명의 연장이 아닌 생명의 질적 갱신을 위한 처절한 선택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100세 시대라는 거대한 문 앞에 서있다. 평균 수명의 증가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명제 아래, 우리 인간 역시 콘도르가 행하는 것과 같은 자발적 자기 혁신의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며 지금까지 익숙하게 살아왔던 방식과 누적된 습관, 고정관념이라는 낡은 부리와 발톱을 스스로 뽑아내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심는 일. 이것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안락함이라는 덫, 낡은 습관이라는 무뎌진 발톱
인간의 삶에서 습관은 생존과 효율성을 위한 자동화 시스템이다. 습관은 우리의 행동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옮겨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지만, 오랫동안 반복돼 온 나쁜 습관은 콘도르의 무뎌진 발톱처럼 더 이상 사냥을 지속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를 초래한다. 특히 100세 시대의 장기 레이스를 완주하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생활 습관들이다. 매일 피우는 담배, 과도한 음주, 짜고 달고 자극적인 식습관, 운동 부족으로 인한 나태한 생활 태도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습관들이 우리에게 일시적인 ‘안락함’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교 활동의 윤활유가 되며, 익숙함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안락함의 덫에 갇히는 순간, 인간은 콘도르가 절벽으로 향하는 고통을 회피하려 든다. 현재의 안락은 미래의 건강과 활력을 담보로 잡는 행위이다.
우리의 뇌는 변화를 싫어하며 본능적으로 현상 유지를 원한다. 수십 년간 굳어진 습관을 깨뜨리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2의 인생, 즉 건강하고 활기찬 후반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 저항을 돌파해야 한다. 발톱을 뽑는 고통은 단기적이지만, 그 고통을 회피했을 때 오는 만성 질환, 무력감, 삶의 질 저하 등 장기적인 대가는 훨씬 더 가혹하다. 혁신은 외부의 강요가 아닌 내부의 절실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00세 인생을 ‘생명 연장’이 아닌 ‘두 번의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갱신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당장의 편안함을 포기할 용기를 내어 낡은 발톱을 뽑아내는 고통의 순간에 스스로를 내던져야 한다.
새로운 부리와 발톱을 벼리는 습관 재설계의 과정

콘도르가 낡은 부리와 발톱을 뽑아낸 후, 새로 돋아날 도구를 기다리는 기간은 처절한 인내와 금욕의 시간이다. 인간에게 이 기간은 곧 ‘습관 재설계’와 ‘규율’을 훈련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부리와 발톱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으며, 고통을 이겨낸 훈련의 결과로 벼려진다.
가장 먼저 혁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건강과 직결된 습관이다. 예를 들자면, 담배를 끊는 것은 단순히 니코틴 의존성과의 싸움이 아니라, 수십 년간 담배가 제공했던 휴식 시간, 스트레스 해소 방식, 사교적 도구 등 삶의 패턴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알코올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단순한 음주량 조절을 넘어, 관계 맺음과 여가 활동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는 이전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를 만드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식습관 개선 또한 마찬가지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가공식품과 고칼로리 음식 대신, 자연식 위주의 균형 잡힌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은 미각과 식욕이라는 강력한 본능과의 싸움이다. 이 투쟁을 통해 건강한 식습관이 자리 잡게 될 때, 이것이 바로 콘도르에게 새로 돋아난 강력한 부리와 발톱이 되어, 앞으로의 수십 년을 힘차게 살아갈 도구를 제공한다.
또한, 제2의 인생은 단순히 건강한 신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정신적, 지적 갱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나 직업적 지식에 안주하는 것은 낡은 부리이다. 4, 5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의 지식은 빠르게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이전에
관심 없던 분야에 도전하며, 새로운 언어나 학문을 익히는 지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사회생활의 무력화를 막고 새로운 관계와 기회를 움켜쥘 수 있게 부리와 발톱을 날카롭게 벼리는 과정이다. 이처럼 자기 혁신은 건강뿐만 아니라 지적, 사회적 영역 전체에 걸친 삶의 재구성 작업이다.
두 번의 삶을 위한 정체성의 재정의와 영속적 비상
콘도르의 혁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그들은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비상한다. 인간의 자기 혁신 또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미래로의 비상’을 목표로 한다. 제2의 인생은 그저 낡은 습관을 끊는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 삶의 목적과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 노화와 함께 사회적 역할의 변화를 의미한다. 은퇴 후의 삶이나 자녀 독립 후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요구한다. 오랫동안 ‘직장인’이나 ‘부모’라는 역할에 갇혀 있던 자아를 해방시키고, ‘학습자’, ‘봉사자’, ‘창조자’와 같은 새로운 역할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낡은 정체성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획득하게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를 혁신하는 일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부정적인 감정 패턴,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불평, 과거에 대한 후회와 같은 정신적 짐들은 콘도르의 날개에 들러붙은 무거운 군더더기와 같다. 이를 털어내고 감사와 긍정,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전환하는 것은 내면의 자발적인 갱신 작업이다. 진정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육체의 생존뿐만 아니라, 정신의 활력과 영혼의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인적인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혁신은 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내내 지속되어야 할 ‘영속적 비상’의 과정이다. 콘도르가 수십 년 후 또다시 갱신을 준비하듯이, 인간도 새로운 습관이 또 다른 안락함이 되어 무뎌질 때마다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재점검하고 갱신해야 한다. 이것이 100세 시대에 요구되는 ‘건강하게 오래 살기’의 진정한 의미이며,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는 인간 정신의 가장 고귀한 도전이다.
고통을 넘어선 두 번째 비상
독수리의 자기 혁신 이야기는 진실 여부에 불구하고 우리 인간에게 참된 교훈을 준다. 이는 잔인한 자연의 이치와 생존 본능을 보여주지만, 우리에게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자발적 선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00세 시대는 우리에게 단순히 긴 시간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했다.
오랫동안 우리를 지탱해왔던 낡은 부리와 발톱을 뽑아내는 고통, 즉 수십 년간의 익숙한 습관을 단절하고 새로운 생활 방식과 사고 체계를 구축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통과 의례이다. 하지만 이 고통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잔재에서 벗어나, 건강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와 유연한 사고방식이라는 새로운 지혜를 장착하게 된다. 제2의 인생은 쇠퇴가 아닌 발전이며, 결핍이 아닌 충만함으로 채워져야 한다. 콘도르가 절벽을 뒤로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듯, 우리도 안락함의 덫을 벗어나 새로운 비상을 준비할 때, 비로소 100세 인생은 진정한 축복으로 빛날 것이다.
-콘도르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진실로 믿고 싶다. 좀 늦은 깨우침이지만 콘도르와 같이 고통을 감수하고 하고 싶은 마음에. 2025. 11. 21 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