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리 입구, 바스라지는 민초의 어버이를 마주하다-심언섭
– 파주목사 박태보의 마애명문 보존을 염원하며

파주 부곡리 마을 입구, 무심히 지나는 바람 속에 발길을 붙잡는 바위 하나가 있다.
그 옛날 파주목사 박태보가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기근을 막아냈던 그 숭고한 공덕을 기려 새긴 마애명문이다.
그러나 오늘 그 앞에선 詩人(시인)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백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새겨졌던 그 바위가 지금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푸석푸석 부서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태보 목사는 파주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린 소나무 같은 분이었다.
1685년 부임 이후, 그는 도탄에 빠진 민의를 외면하지 않았고, 훗날 자신의 목숨마저 아끼지 않으며 대의를 지켰다.
부곡리 입구의 이 글씨들은 단순히 관료의 업적을 자랑하는 비석이 아니라,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는 파주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이 바위를 뚫고 맺힌 눈물 자국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기록이 정비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풍화되어 가고 있다. 손끝만 대어도 바스러지는 글자들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지 자문해 본다.
“뿌리 깊은 소나무는 어지간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다”고 하였으나 인간이 남긴 흔적은 이토록 애처롭게 허물어지고 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이 땅의 역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숨어 있는 문화재’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다.
파주시는 이제 이 바스라지는 기억에 응답해야 한다. 부곡리 입구의 마애명문은 단순히 오래된 돌덩이가 아니라, 파주가 간직한 ‘목민의 정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모두 지워져 평범한 바위로 돌아가기 전에, 전문가의 손길로 정비하고 보전하여 후세에게 그 푸른 솔향기를 전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하듯, 우리 역사의 작은 흔적 하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곧 이 고장의 미래를 일구는 토양이 되리라, 여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