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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 시인이 쓴 파주이야기 – 이동재

이동재 시인

이동재 시인은 강화 교동도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시와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약 15년 전 파주 지역의 중등 교사로 발령받은 아내를 따라 노부모와 두 아들을 데리고 파주로 이주했다. 탄현면 통일동산 인근에서 5년 정도 거주하다가 약 10년 전 광탄면 창만리로 거처를 옮겨 현재까지 정착해 살고 있다.

2018년 발간한 다섯 번째 시집 『파주』는 정착과 이주 사이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억압과 자유를 노래한 작품집이다. 이 시집에는 ‘창만리 겨울 소묘’를 비롯하여 파주에서의 생활상을 위트와 유머로 풀어낸 6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시인은 금병산 자락 아래 창만리의 풍경과 이웃들의 일상을 ‘산야조비도’, ‘국기파적도’와 같은 가상의 그림 제목을 빌려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파주를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시적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파주위키 편집인-

창만리 겨울 소묘

겨우내 집 앞 풍경은 정물산수인데
가끔 오리 떼가 날아서
산야조비도山野島飛圖
아무리 봐도 금병산 이하 정물인데
이따금 노인정 게양대의 태극기가 펄럭여
국기파적도國旗破寂圖
가끔 눈이 내린 아침이면
촌옹소설도村翁掃雪圖
개 고양이 풀려난 저녁이면
견묘난장도犬猫亂場圖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부인훤흰도婦人喧喧圖 내지
부인고성질부자도婦人高聲叱夫子圖
또 하루가 저물고 나면 마침내 
일족취침각자몽생도一族就寢各自夢生圖
나 홀로 독야취음장탄식도獨夜就飲長歎息圖 
혹은 심심파적자위도深深破寂自慰圖
간혹 청년회장이모내방권주희작도青年會長李某來訪勸酒戲作圖 
창만리는 창만리 
나는 나
나도 창만리 내가 창만리

알고나 있으라고

새 집 마당에 과일 나무 십 수 그루

그렇게 심고 나서

서울 사는 막내 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른 건 다 심었는데

포도나무만 못 심었다고

알고나 있으라고

광탄시장에서 삼만 원 하더라고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전화했다고

고향집 담장 밑에서

처마 위로 올라가던 그 포도나무

생각나지 않냐고

그저 알고나 있으라고

나무 값이 비싸서 전화한 건 절대 아니라고

마을 인심

열무 키워 한 단

감자 심어서 한 자루

오이 재배해 한 다라

토마토 심어 한 바가지

상추 심어 또 한 소쿠리

먹어나 보라고


내다 팔 거 뭐 있냐고

나눠먹기도 빠듯한데

먹을 거 있으면 다 가져다 먹으라고



남으면 썩을 거

함께 먹자고

낙상, 반비상

우리 마음은 창만5리가 끝이지만 바로 옆 산골짜기 창만6리 에 살고 있는 이정봉 형이 비닐하우스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 졌다는 소식을 너무 멀어서 열흘쯤 지난 다음에 알았다 원래부 터 그는 날지 못했다 어쩌자고 지붕에 올라간 것인지는 모르겠 으나 날개도 없는 사람이 술에 절은 몸으로 그나마 단단한 땅이 안전하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그냥 퉁치려다가 혹시 6리가 너무 멀어서 지붕 위에 올라가 5리를 내려다보다가 5리에 대한 그리움에 고개를 빼다가 내친김에 지붕 위에까지 올라간 것은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가 없는 창만5리가 너무 적적하 기도 해서 서울대 병원 입원실을 찾아가봤더니 이 기회에 몸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집 진돗개가 새끼를 또 낳고 세 마리나 낳고 산후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창만6리 엔 봄이 오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술 한 병 사들고 가고 싶은데 창 만6리에 정봉이 형은 없고 끝까지 가는 정봉이인 끝봉이는 없고 올봄은 그냥 심심하게 왔다가나 보다 매화가 피고 철쭉이 펴도 술 한 잔 할 사람이 없으니 봄이 봄이 아니다고 생각하며 마을에 이제 사람 없다고 정봉이 형은 원래 창만6리 사람이라고 올봄은 그냥 다 건너뛰자고 이장에게 통보하고 돌아와 눕는다

시골 버스

영하의 겨울 
시간당 한 대인 버스를
눈꼴 빠지게 기다리다 알았다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것이 뭔가를
오지 않는 것의 그리움을
스쳐지나가는 것들의 차가움을
한 사십 분쯤 지난 뒤
온몸이 얼고 난 후
따스함이 뭔지를
마침내 이처럼 간절한 것이
최근에 없었다는 것을
버스여, 오지 않는 버스여
너를 기다리다 새삼 알아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걸
이 땅에선 기다림이 역사라는 걸

파주 적군묘지

무덤 앞에 묘지목 세우고 
무명씨 묘라 한다

죽은 곳은 알아도
태어나 자란 곳은 모른다

적군이라 하고
간혹 동포라고도 한다

파주

파주에서 산다는 건 
어디 멀리도 못 가고
주말이면 임진강 물빛이나
보러 가는 것

나이 들어가며 여기에서 산다는 건
아주 멀리 달아나지도 못하고
돌아와 오랜 아내와
철따라 임진강 물빛이나
보러 가는 것

그 물 매운탕에 끓는 속이나 푸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작가 프로필

강화 교동도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국문과 대학원 졸업. 시인·소설가(필명 허문재)·문학박사. 한림대, 서남대, 전주대, 전북대, 우송공업대, 동서울대, 대진대, 춘천교육대, 고려대, 튀르키예 에르지예스대학 한국어문학과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소설집으로 『파워인터뷰』 『국경』, 장편소설 『남쪽 바다의 전언』 등과 시집으로 『민통선 망둥어 낚시』 『세상의 빈집』 『포르노 배우 문상기』 『분단시대의 사소한 너무나 사소한』 『파주』 『주 다는 남자』 『이런 젠장 이런 것도 시가 되네』 『시인과 여배우』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침묵의 시와 소설의 수다』 『작가를 스치다』, 저서에 『20세기의 한국소설사』 등이 있다.

15년 전 파주 지역의 중등 교사로 발령을 받은 아내를 따라서 노부모와 아들 둘을 데리고 탄현면 통일동산으로 이사해서 5년쯤 살다가 광탄면으로 10여 년 전에 이사를 온 후 계속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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