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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암각문을 기록하다[2편] – 강근숙

기해년己亥年 음력 삼월 스무닷새, 세 사람은 백학산 계곡을 다시 찾았다. 간간이 ‘지뢰’라는 푯말이 눈에 띄어 머리칼이 쭈뼛 서며 두려웠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계곡을 또 찾아간 것은 바로 이맘때, 계축모춘癸丑暮春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고 싶어서였다. 온갖 나무들이 가지 끝에 색색의 꽃망울과 연초록 이파리를 달고 팔랑인다. 연둣빛 신록이 피어나는 봄 동산에서 새들이 노래하며 마중을 나온다. ‘그래 나도 반가워’ 화답하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등성이에 올라 가슴을 활짝 펴고 산 내음을 깊이 들이마신다. 다시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거북 형상의 등짝이며, 바로 아래가 구유암龜遊巖 이었다. 장수의 상징이자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진 거북, 이 길을 걸어 계곡을 찾아가던 선비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신성한 거북바위를 발견해 구유암이라 이름 붙였음이 확실하다.

석판 1. 구유암 / 석판 2. 구유암 하단에 새간 이름

석판1, 龜遊巖구유암 癸丑暮春계축모춘

석판2, 李庸謙이용겸, 李好謙이호겸, 李鎭赫이진혁, 李啓豊이계풍, 張 暐장 위, 李玄錫이현석, 全鍾振전종진

산골짜기로 들어갈수록 물소리 새소리가 청아하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숲속 오케스트라 교향곡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 만물이 깨어나 생명을 노래하는 계절, 눈을 감고 그 품에 안겨 나도 풋풋한 나무 한 그루가 된다. 인생은 잠깐이다. 옛사람들은 속절없이 가는 인생을 ‘눈 속의 기러기 발자국’에 비유했다. 곧 없어진다는 뜻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아나는 세월이 아쉬워 석벽에 이름을 남긴 선비들,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 구유암에서부터 샅샅이 살펴봐야겠다. 계곡에 처음 왔을 때는 설레어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 오늘은 암각문에 번호를 매기고, 사진을 찍은 뒤, 그림을 그려 확인된 이름을 기록하려 한다. 서편 가장 위쪽, ‘구유암龜遊巖 계축모춘癸丑暮春’ 새긴 석벽 하단에는 일곱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느 시대 누구의 글씨일까. 끝없이 갈고 닦아 푸른 기운이 감도는 필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4. 백학산 꼭대기 폐허 터 기와 조각

백학산에 흩어진 기와 조각 / 장단군 지도

산꼭대기로 올라갔던 류명삼 시인이 기와 몇 조각을 주워서 내려왔다. 백학산 꼭대기 팔부 능선 지점에는 군인들의 초소가 있고 철책이 쳐져 있는데, 그 아래 지점에 돌과 기와 조각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공민왕 때 백학산에 지었다는 신궁新宮터는 아닐까. 기와 조각을 살펴보니 창해파문와편滄海波紋瓦片과 무문와편無紋瓦片, 백자와편白瓷瓦片이었다. 어느 시대 기와인지 궁금해 기외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조선 시대 거라며, 시대별 기와 설명을 자세히 해주었다. 삼소三蘇의 하나로 꼽히던 명산에 정자나 사찰 하나 없었을까만은 『장단군지長郡誌』에는 정자나 사찰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장단군지 지도를 찾아보았다. 백학산이 읍치를 감싼 중앙부분에는 아사衙舍, 객사客舍, 신당神堂, 옥獄, 본창本倉, 향교鄕校가 그려져 있고, 사직단社稷壇과 여단厲壇, 홍살문이 표시되어 있다. 장단군지에 ‘백학산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내용이 있으나 어디서 지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산꼭대기 폐허 터에는 정자가 있었을까. 혹은 사찰이 있었을까. 기와 조각과 궁금증을 가방에 넣고 암벽문이 새겨진 석벽으로 향했다.

석판 3 / 석판 4 / 석판 5 / 석펀 6

석판3, 李時恒이시항, 金寬振김관진, 金義永김의영, 金鍾汶김종문, 朴昊一박호일

석판4, 張緝勳장집훈, 高鵬翼고붕익, 秦錫萬진석만, 李根秀이근수, 金振翼김진익,

석판5, 鄭晩淳정만순, 金奎壁김규벽, 全仁濟전인제, 朴昊麟박호린, 千春根천춘근석판6, 李晩柱이만주, 孔鳴周공명주, 南命錫남명석, 李時觀이시관, 李漢柱이한주,

李松晩이송만, 全中植전중식

5. 영회대 부근 석벽

영희대. 석판 7 / 영희대 우축 석판. 8, 8, 10

석판7, 永會臺영회대, 방서 歲在癸丑暮春세재계축모춘

석판8, 朴忠源박충원, 金鍾殷김종은, 咸應植함응식, 李貞植이정식, 黃河淸황하청, 朴晩燁박만엽, 李文皓이문호,

석판9, 李松祐이송우, 張紀勳장기훈, 李松茂이송무, 全聲權전성권, 李時佐이시좌, 金鍊正김연정

석판10, 李季皓이계호, 李善皓이선호, 南圭錫남규석, 庾在和유재화, 李鍾衡이종형, 黃虔五황건오

나무뿌리와 흙이 흘러내려 판독하기 어려운 글자를 자운서원 류병기 원장은 나뭇가지로 한 획 한 획 긁어 글자를 찾아내고 있었다. 류 원장은 우리 고장 문화유적도 해박할 뿐 아니라 한자도 수준급이라 유적지에 동행하면 걸림이 없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영회대永會臺 방서傍書 ‘歲在癸丑暮春’을 찾아냈다. ‘세재계축모춘’은 왕희지가 쓴 난정서蘭亭序 첫 줄에 들어있는 글귀 아닌가. 점점 수수께끼가 풀려간다.

석판 11 / 우측 석판 11, 좌측 12 / 석판 13

석판11, 李宗哲이종철, 徐快興서쾌흥, 金樵夢김초몽, 朴周恪박주각, 曺允燁조윤엽, 崔五長최오장, 林學伊임학이

석판12, 朴命孫박명손, 金周孫김주손, 金三箕김삼기, 鄭壽福정수복, 吳在東오재동

석판13, 陳聖哲진성철, 崔敬哲최경철

6. 아양대

아양대 / 아양대 하단. 석판 15

석판14, 峨洋臺아양대

석판15, 李殷集이은집, 李熙悳이희덕, 金洙瑩이수영, 金顯國김현국, 金秀玉김수옥, 李鉉九이현구, 鄭德永정덕영, 高中赫고중혁

7. 동편 석벽

석판 16, 흙 속에 묻힌 암각문 / 석판 16, 흙 속에서 드러난 암각문

석판16, 李鶴柱이학주, 李昌善이창선, 朴禮淳박예순, 朴齊桓박제항, 鄭在豊정재풍, 徐昌煥서창환, 李膺柱이응주

석판 17 / 석판 18

석판17, 千完駿천완준, 朴文植박문식, 金奎鉉김규현, 張敎寬장교관, 李豊集이풍집, 金光淳김광순, 韓百源한백원

석판18, 李寅植이인식, 高德章고덕장, 河濟萬하제만, 朴昊象박호상, 朴晩亨박만형, 全學濟전학제, 朴昊明박호명, 全益濟전익제, 全敏濟전민제, 朴昊駿박호준, 金亨權김형권, 金完國김완국, 李枝洪이기홍

석판19 좌, 석판 20 우 / 석판 21

석판19, 金壽宗김수종, 鄭文亨정문형, 李義惇이의돈, 李時正이시정, 權逈憲권형헌, 朴漢坤박한곤

석판20, 李枝淑이기숙, 金德恒김덕항, 徐啓三서계삼, 全鍾祐전종우, 李梯順이제순

석판21, 李熙哲이희철, 金明澤김명택, 張敎煥장교환, 李熙人이희인, 金魯益김노익

양쪽암벽을 세세하게 훑어 내려왔다. 서편은 구유암부터 영회대, 아양대까지 모두 17개의 석판으로 70명의 이름이 새겨있고, 이름 없는 석판도 있었다. 동편 능선은 비교적 평평하고 둔덕도 낮아, 6개의 석판에 43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계곡을 따라 마주 보는 암각문이 이어진 길이는 대략 5·6백 미터로 자연지형을 이용한 석판은 크기도 높낮이도 각기 다르지만, 해서楷書로 쓴 글씨는 단하면서도 필치가 아름답다. 바위 크기에 따라 둘, 다섯, 여섯, 일곱, 열세 명의 이름을 새긴 석판은 모두 23개로 판독 불가는 2개였고, 확인된 이름은 11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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