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과 고죽의 찐사랑- 강석재
그들의 사랑이 450여년후 현대에 부활하다
홍랑(洪娘)은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시대 3대 기녀로 불리는 기생으로 사대부를 사랑한 기구한 운명 때문에 파주 해주최씨 선산에 함께 묻힌 여인이다.
홍랑은 함경도 홍원 출신으로 어려서 홀어머니를 봉양하다가 12살에 어머니가 죽자 그 지역의 관아인 함경도 홍원기생으로 입적했다. 그 후 16세가 넘던 가을에 홍랑은 당시 율곡 이이, 구봉 송익필 등과 함께 조선 중기 8대 문장가이던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을 만나게 된다. 홍랑은 비록 변방의 천한 기생신분이었지만 당대의 시인이었던 최경창과 시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교양을 가졌으며 미모 또한 겸비했던 터였다.
최경창(1539~1583)이 29세때(1568년) 문과에 급제하여 1573년 가을에 북도평사(병마절도사 보좌관)으로 제수받아 함경북도 경성에 부임하면서 홍랑과의 사랑이 시작된다. 첫 만남은 부임이후 가을 어느날 고을 원님이 초청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두사람은 당시의 변방 풍속대로 함께 기거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심우(心友)이자 시와 풍류를 나누는 시우(詩友)로 발전하며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북도평사 보직은 순환 보직되는 자리였고, 이듬해 봄에 보직을 마치고 한양으로 복귀하는 최경창을 잊지 못해 홍랑은 동행했으나 당시 관기는 소속된 지역을 벗어날 수 없어 함경도 경계인 함관령에서 되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이별의 절절함을 담은 송별시를 써서 최경창에게 보냈고 최경창은 답시로 송별시를 홍랑에게 전했다. 홍랑의 시는 국문학자이자 시조시인으로 고전연구에 공헌한 가람 이병기 선생(1891~1968)이 편찬한 “국문학전사”에 수록됐고 이후 국내 고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됐으며, 2000년 11월경 시(詩) 원본이 발견되면서 유명해 졌다.
묏버들 – 홍랑
산버들 곱게 꺽어 보내노니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번방곡(飜方曲) -최경창
折楊柳寄與千里人(절양류기여천리인) 버들가지 꺾어 천리밖 임에게 주노니
爲我試向庭前種(위아시향정전종) 나를 위해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須知一夜新生葉(수지일야신생엽) 하룻밤 사이 새잎이 나거들랑
憔悴愁眉是妾身(초췌수미시첩신) 초췌한 근심어린 눈섶이 저인줄 아세요
송 별(送別) - 최경창
말없이 마주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말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최경창이 복귀한 다음 해에 병이 들어 겨울까지 자리에서 일어 나지 못했다. 그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에 들어와서 병 수발을 했다. 그러나 사헌부는 최경창이 북방의 관기를 도성에 살게 한 것을 빌미로 1576년 봄에 파직 시켰다.
파직 당한 최경창은 본래의 깨끗한 성품을 인정받아 복직하게 되었고 몇 번 변방의 한직으로 근무하다가 1583년 45세의 나이로 객사했다. 홍랑은 파주 월롱면 영태리 묘지에 찾아와 대성통곡하고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어 흉한 모습으로 시묘살이를 했다.
홍랑이 시묘살이를 한지 9년이 되던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유작들을 모아 고향으로 피난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최경창의 유작을 가족에게 전해 주었다.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가 비록 천한 신분의 관기였으나 집안 사람으로 여겨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홍랑의 무덤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
묘지 이전
교하읍 다율리로 이전
원래 최씨 문중의 선산 4만평이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고 최경창과 홍랑은 이곳 문중의 묘지에 있었다. 이 선산은 1969년 캠프에드워드가 주둔하면서 국방부에 의해 미군부대 부지로 강제로 수용됐다. 영태리의 선산을 징발 당한 최씨 문중은 당시 교하면 다율리 519-7번지 야산을 구입해 종중묘를 이장했다.
법원읍 동문리로 이전
교하 다율리로 문중 묘를 이장하고 2000년 홍랑의 시가 발견되자 홍랑의 묘지에 문학과 관련된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방문이 많아 졌다.2005년 교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종중 소유의 부지 1만평중 절반 가량이 수용됐고 2018년 GTX A노선의 기지창으로 결정되면서 다시 수용지역으로 편입되어 2023년 현재 위치인 법원읍 동문리 295-9번지로 이전 안장됐다.
홍랑(洪娘)의 묏버들 – 450여년 후 현대에 부활하다.
홍랑의 묏버들은 450여년후 교육자이자 예술가인 최흥호 작사가가 노랫말을 쓰고 이호섭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 2016년 3월 민수현 트롯가수의 정규앨범에 수록돼 발표된 “홍랑”이란 트롯곡으로 부활했다.
민수현은 MBN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으나, 종편 TV조선 미스터트롯 최고가수 임영웅이 예능프로“뽕숭아 학당”프로 <숨은트롯 명곡코너>에서 “홍랑”을 열창하면서 『임영웅 공식유트브 채널』에 업데이트 이후 2024년 3월26일 까지 1,600만뷰를 돌파하면서 민수현도 이름을 알리게 된 뜻깊은 곡이다.
특히 노래 홍랑을 작사한 최흥호는 교육자겸 예술가로 2022~2025년 까지 4년간 제4회 남해안 전국해변가요제와 제14회 꿈재능 전국문화예술경연대회 노래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 했다.
최흥호 작가는 홍랑의 시를 보며 “마치 한편의 대서사시가 마음 깊이 소용돌이 치는 것 같다”고 하며 “조선 중기의 한여인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그 순간, 그의 ‘절절한 진심’을 시대를 넘어 공감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 내 몫이었다.”라고 말한다. 또한 “진짜 사랑은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다. 그러기에 홍랑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의 가사속에서 숨쉬고 있다”라고 강조한다.
홍 랑(洪 娘) 최흥호 작사/이호섭 작곡/민수현 노래
(1) 쓰라린 이별에 우는 맘 버들가지 꺾어 보내노라
진한 사랑 진한 정(情)을 어이두고 떠나 갔나요
백년이 흘러가도 천년이 가도 나는 그대 여자랍니다
객창에 피는 묏버들 보면 날인가 홍랑인가 여기소서
(2) 소리없이 울면서 지샌 밤 방울방울 띄워 보내노라
진한 사랑 진한 정(情)을 어이두고 떠나 갔나요
백년이 흘러가도 천년이 가도 나는 그대 여자랍니다
객창에 우는 두견새 보면 날인가 홍랑인가 여기소서
<최흥호 작가 작품세계관>
*붓 대신 마음으로 시를 쓰고, 음표 대신 눈빛으로 노래를 짓는다.
*가사는 노래의 심장이다. 심장이 뛰지 않으면 노래도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작사는 문학의 언어가 아니라 호흡의 언어다. 글이 아니라 노래가 되는 문장
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