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부속

장군집

돼지부속은 돼지를 도축하고 일반 상품으로 수요가 적은 껍데기, 막창, 염통, 갈매기살 등 주로 내장을 주로 연탄으로 구어 먹는 요리를 말한다.

돼지부속집 시작

1960년~1970년대에 파주군의 인구는 16만명 정도로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인구 유입이 많아졌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1960년대 당시 파주세무서가 고양시를 관할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인구 유입이 많아 지면서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게 되었고 육류 소비도 많아 졌다. 당시에 냉장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도축장은 대부분 하천변에 위치해 있었다. 하천에 시설이 있어야 도축시에 배출되는 오물 처리를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도축장은 읍면단위로 시가지 중심에 가까이에 있었다.

도축장에서 처리된 일반적인 육류는 정육점으로 공급되었고 간과 창자 등과 같은 내장은 헐 값으로 팔렸다. 살코기외에는 도축장과 인접한 순대국집이나 돼지부속집으로 공급되어 서민들이 애용하는 요리가 되었다.

당시 조리면 봉일천에서 유명했던 장군집은 공릉천에 있는 도축장 인접하고 5일장이 열리는 시장에 위치했다. 1980년대 금촌 직장인들은 교통이 불편해도 봉일천 장군집에 가서 회식을 하기도 했다.

파주의 돼지 부속집으로 조리읍 봉일천리, 금촌 시가지, 교하면사무소 앞 등 지역별로 두세개 업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부속 요리법

1980년경에는 대부분 돼지갈비와 삽겹살을 구어 먹는게 일반적이었고 금촌역과 문산역 주변에는 고깃집이 즐비했다. 그러나 돼지부속집은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가지 부위를 골고루 먹을 수 있다. 보통 돼지부속 모듬은 갈매기살, 염통, 껍데기, 내장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업소마다 차이가 있다.

돼지부속 모듬에는 돼지의 생식기 부위도 포함되어 있어 독특한 맛과 호기심으로 많은 사람이 모듬을 주문하기도 했고 추가로 주문도 가능했다. 1980년말 경에는 돼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생식기를 거세하면서 공급이 중단됐다.

돼지부속집의 요리법도 업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번개탄에 석쇠를 얹어 구어 먹는 방법이 일반적이었고, 교하면사무소 근처에 있던 부속집은 은박지 호일 위에 콩나물과 부속고기를 고추장 무침으로 해서 볶는 방식이었다.

파주가 원조?

미군부대로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육류 소비량이 급증[1]하고 상대적으로 부산물도 많아 졌다. 늘어난 돼지부속의 소비처가 필요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돼지부속 구이집이 발생했다.

값도 싸고 양도 많은 돼지부속 구이를 서민들이 선호하게 되면서 돼지부속집은 성황을 이루었고 공릉천 도축장에 인접했던 장군집이 돼지부속의 원조가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와함께 돼지부속의 원조가 장군집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돼지부속집의 업소 이름이 봉일천의 장군집 상호를 따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음식점을 소개하는 다이닝코드에서 검색한 전국 부속집 업소 내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돼지부속' 으로 검색하면 청주시 흥덕구 장군집, 용인시 수지구 여장군, 동대문구 회기동 장군집, 중랑구 상봉동 봉일천돼지부속, 고양시 일산서구 장군집, 인천 남동구 구일산장군집 등의 이름이 상위권에 나타난다.

2000년도에는 돼지부속집이 점차 유명해지면서 돼지부속 고기에 양념을 하여 판매하는 체인점이 영업하기도 했지만 일반 돼지부속집 처럼 흥망성쇠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봉일천의 장군집은 오래된 명성을 지키면서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봉일천 장군집 이름

봉일천 장군집은 1977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장군집을 창업한 주인은 인민군 소좌 출신으로 한국군으로 따지면 소령정도이다. 장군집 주인의 삼촌은 인민군 소장으로 북한의 장군급이었다고 한다.

장군집 주인은 한국전쟁 전투에서 소속 부대 인민군 30여명이 전사했고 군사재판에 넘겨졌지만 인민군 소장인 삼촌 덕분에 전투부대에 다시 복귀했다. 복귀후 다른 전투에서 소속 부대 인민군 50여명이 전사했고 본인은 포로가 되었다. 1953년 포로교환시 남한에 잔류하였고 미군주둔으로 경기가 좋았던 봉일천에 자리 잡았다. --pi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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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1. 육류 부족으로 1976년부터 쇠고기 수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