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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토) 20:56 판
감악산(紺岳山)은 파주시, 양주시, 연천군이 경계를 이루는 675m 높이의 산으로 신라시대부터 신령한 산으로 알려져있다.
개요
백두대간이 금강산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북정맥으로 양주에서 갈라져 적성 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감악산이 위치한다.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군 남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675m 산으로 양주시 남면 방향으로 임꺽정봉과 장군봉이 있다. 서쪽 5백여m 거리에는 적성면 객현리가 행정구역으로 까치봉이 있다.
설마리 계곡에는 2016년 개장된 감악산 출렁다리와 범륜사와 인접하여 운계폭포가 있다. 범륜사 입구에서 설마천로로 따라 적성 시가지 방향 2.3km 지점에는 영국군설마리전투추모공원이 있다.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 양주군 남면, 연천군 전곡읍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옛부터 많은 인물들이 은거지로 이용했다. 그 인물중 설인귀, 임꺽정, 김돈중의 이야기 전해 내려 온다.
지명 유래
옛날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말 어원으로는 신령한 산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옛 우리말의 '감-검'은 '크다' , '신성하다', '거룩하다' 뜻으로 큰 산,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감뫼(검뫼)'를 한자화하면서 감악산(紺岳山)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감악산이라는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1145년)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고려사(高麗史, 1451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대부분의 지리서와 읍지 등에 등장한다. 해동지도(海東地圖,1760)에는 감악산(紺嶽山)이라는 이름 대신 한자의 획수를 줄여 감악산(甘嶽山)으로 표기한 사례 있다.
감악산(紺岳山)이라는 이름 가진 곳도 강원도 원주와 경남 거창군에 있다. 강원도 원주와 충북 제천시 걸쳐 있는 감악산은 높이가 945m이고 거창군의 감악산은 높이가 952m 이다.
역사 기록
감악산은 신라 때부터 명산이며 무속의 신산(神山)의 하나로, 무속인을 통해 봄가을로 별기은(別祈恩)이라는 제례를 지냈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있다. 이 산에는 감악사(紺岳祠)와 운계사(雲溪寺)·신암사(神巖寺)·봉암사(鳳巖寺) 등의 당과 절이 있었다.
감악산 신당
신라시대 이후 감악산 정상에 있는 '감악사'에서 정기적으로 산신제를 지냈으며 조선시대에는 감악산 신당이라고 불렀다. 조선초 신당에는 위패 없이 진흙으로 만든 형상이 6개가 있었으나 나중 감악산지신(紺嶽山之神)이라는 위패를 따로 설치했다.
연산군 일기에 신당을 수리하는데 140일이 소요됐다는 기록이 있다. 오랜 기간 공사를 강행한 것은 그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감악산 산신제를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1)
감악사라는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처음 나타나고 있어 조선 후기에도 감악산 산신제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金正浩)[?~1866]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고려 시대 이후 3척 높이의 석단(石壇)이 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를 모신 설인귀사(薛仁貴祠)와 오래된 비석이 있다고 기록했다.2) — 3pi 2022/02/04 19:11
감악산비
적성면 객현리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고비(古碑)로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석비로 높이170cm, 너비 70~79cm, 두께 15~19cm의 규모이다.1986년 8월 17일 파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됐다.
이 고비는 자연석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표면을 손질해 글자를 새겼으나 완전히 마멸되어 글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 ‘빗돌대왕비’ 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원래부터 문자를 새기지 않고 세운 무자비(無字碑)라고도 한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 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감악산비를 조사한 결과 비가 세워진 근처에 삼국시대의 기와조각이 출토되고 있으며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흡사하여 신라비로 추정하고 있다.
유명 장소
범륜사
범륜사(梵輪寺)는 1970년에 옛 운계사터가 있던 곳에 창건된 절이다. 절 입구에는 해탈교가 있고 2층에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감악산 출렁다리
감악산 출렁다리는 감악산 힐링파크 뒷산에서 운계폭포로 횡단하는 구간에 설치된 150m 길이의 현수교이다. 2016년 개장된 출렁다리는 개장 3개월만에 36만명이 방문하였고 2017년 67만명, 2018년 55만명 등의 방문객이 찾아왔다.자세히 보기
감악산 야간 경관조명
감악산 경관조명은 2020.6월 준공한 시설로 힐링파크 입구에서 은계폭포까지의 1km 구간에 반딧불과 보름달의 인공시설 조명과 출렁다리와 운계폭포 등의 조명기가 설치됐다. 운계폭포에서는 영상과 3D맵핑 기법을 이용한 영상쇼가 연출된다.자세히 보기
감악산 힐링파크
설마천 계곡에서 무허가로 운영되던 음식점들이 2011년 7월 수해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자 파주시가 이주단지를 조성했다. 2019.8.22일 착공식을 가졌으며 부지는 4,545 ㎡ 로 농산물판매장, 감악산 만남의 광장, 출렁다리 입구, 다양한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감악산 둘레길
감악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서쪽은 파주시 적성면, 북동쪽은 연천군 전곡읍, 남동쪽은 양주시 남면 등 3곳에 걸쳐 있다. 감악산 둘레길 조성사업은 2016년 경기도 특별조정교부금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파주 지역에는 청산계곡길 ( 범륜사-다래삼거리-부도골쉼터) 2.2km, 손마중길 (범륜사-두꺼비바위-산촌마을) 3.9km, 천둥바윗길 (산촌마을-봉암사-하늘동네길) 4.3km의 둘레길이 조성됐다
기타 시설물
감악산 정상인 객현리 40- 2번지 상에는 2021년에 준공된 지하2층, 지상5층 규모의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다. 이곳에는 직경 8.5m의 레이더가 설치되어 반경 125km 이내의 지상에 내리는 비의 양을 관측한다.
감악산 관측소와 함께 예봉산(남양주), 가리산(강원도 홍천) 강우레이더로 서울,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 내리는 비를 집중적으로 관측할 수 있어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한 돌발 홍수에 신속하게 대비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설 외에도 정상 부근에는 방송국의 디지털TV와 FM 라디오, 지상파 DMB 전파를 동두천,양주, 연천, 파주 일부로 송출하는 중계소도 있다.
감악산의 인물
설인귀
설인귀는 당나라 장수이지만 적성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감악산 산신으로 숭앙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1451)에도 “감악산사는 민간에 전하기를 신라가 당나라의 설인귀를 산신으로 삼고 있다(紺岳祠諺傳 新羅以唐薛仁貴爲山神)”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설인귀(薛仁貴, 613년 ~ 683년)는 당나라 초기의 명장 중의 하나이다. 한반도 삼국시대의 흥망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당태종을 도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의 통일을 방해한 인물이다.
적성에는 설인귀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마지리(馬智里)는 설인귀가 말을 타고 지나 다녀 말발굽 자국이 많다하여 마제리(馬帝里 )리라 하였다가 마지리가 됐다. 무술을 연마한 마을은 무건리(武建里),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감악산 봉으로 말을 달렸다고 해서 설마리(雪馬里)라고 부른다.
설인귀가 신격화 된것은 통일 신라 이후 설인귀를 감악산 산신으로 추앙해 고구려 유민들이 옛 고구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없애고 고구려의 멸망이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한다. ((-설인귀 전설의 비교 고찰, 이기형 2006년))
임꺽정
감악산에는 조선중기 의적이라고 불리던 임꺽정이 관군을 피해 숨어 있던 굴이 있어 임꺽정봉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임꺽정이 양주 출신이라 황해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피신했던 곳으로 보이고 양주시 불곡산 근처에도 임꺽정봉이 있다.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출신이었으며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났다. 단 일반적으로 백정 하면 생각하는 짐승 도축하는 백정이 아니라 버드나무로 생활도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고리백정이었다고 한다. 도적 활동은 당시 양주의 남쪽 지역에서 했다. 지금으로 치면 남양주시 지역이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명확한 계기나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백정으로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활동하던 무대가 되었던 명종 대에는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아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웠으며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임꺽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틈을 타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불평 분자들을 선동하여 황해도및 함경도를 중심으로 각지의 관아와 민가의 재물을 훔치며 종횡무진하였다. 이 때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임꺽정이 한 고을에 나타났다 하면 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여 교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전한다((나무위키))
임꺽정봉은 감악산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김돈중
1170년 18대 고려 의종때 무신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 무신난의 단초를 제공했던 인물로 감악산으로 피신왔다가 노비의 신고로 붙잡혀 살해 당했다.
남을진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벼슬을 버리고 양주군 은현면 하패리에 은거했다. 조선이 개국된 후 수차에 걸친 태조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그의 절의에 감복한 태조가 사천백에 봉하자 감악산에 들어가 세상을 등지고 일생을 살았다.
감악산 힐링테마파크 조성 사업
파주시는 2011년 감악산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적성면 설마리 산24번지 일원에 이주단지와 , 공원, 산책로를 조성했다.
2014년 경기도 공모사업인 「NEXT경기 창조오디션」혁신상 67억원과 감악산3개시·군통합브랜딩 구축사업 공모 등에 선정되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전체 129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됐다.
이 사업으로 감악산 둘레길 21km와 산책로 6km, 힐핑파크 등을 조성했고 출렁다리도 2015년 (주)케이블브릿지와 계약하여 2016년에 준공했다.
감악산 국립자연휴양림 추진
적성면 객현리 산148번지외 5개 필지 329.555㎡(10만평)에 '국립 파주 감악산 자연휴양림'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자연 휴양림은 산림이 울창한 지역에 숙박시설, 야영장, 취사장 등의 휴양시설을 설치하고 시설입장료, 사용 수수료등을 징수한다. 경기도 내에는 연천의 고대산자연휴양림등 전체 18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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