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는 1459년(세조5년) '파주목'이 되면서 처음 지명이 만들어졌고 현재 파주읍 파주리에 관아가 있었다. 경의선이 개통되자 일제는 파주리의 군청을 문산으로 이전했고 한국전쟁시 금촌으로 피난 왔다가 현재 위치에 남아 있게 됐다.
파주목 관아
파주목은 봉서산을 진산으로 하면서 현 파주리 파주초등학교와 기무부대 중심으로 관아가 위치했다. 관아가 있던 부지만해도 금촌택지 C3블록의 2배가 넘는 93천여㎡(28천여평) 규모이고 이외에 연무정, 사당, 무기고를 포함하면 r규모가 10만여㎡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아의 건축물들은 봉서산 자락에서 ‘ㄱ’자 형태로 관아 건물들이 남북으로 늘어선 형태로 건축됐다. 관아 건물은 사직단과 동헌, 창고, 무기고, 풍계사우 사당, 객사 등 6개소가 있었고 교육기관인 향교도 별도로 있었다.
관아지 건축물은 1842년 7개소가 있었으나 1899년에는 49개 건축물로 늘어 났다. 관아지 건축물이 늘어 난 것은 철종대(1849∼1863) 이후 유숙자가 늘어나면서 신축 또는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1895년 행정체제 개편으로 파주군이 되었던 관아를 일제는 타용도로 이용했다. 이때 고을의 구심점이었던 객사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조선인들이 반대하여 학교로 전환됐다. 객사는 파주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하면서 교실로 사용했다가 한국전쟁시 소실됐다.
휴전후 파주국민학교는 동헌 위치로 옮겨 재건됐고 소실된 객사 부지는 1953년 미1군단 CIC부대가 주둔하다가 한국군 기무부대로 이관됐다.
당시 파주리에 있던 파주군청은 일제가 경의선 철로를 개통하면서 1908년 문산역 근처인 현재 문산 북파주 농협 근처 문산리로 이전했다.
파주군청 이전
문산은 조선조 이전부터 풍덕, 김포, 강화, 고랑포, 연천, 송도와 한양등지를 황포 돛대로 왕래하던 곳이다. 포구는 상선배와 농산물의 물물교환의 집결지로 대시장이 형성되어 호황을 이루었다.
경의선 문산역이 개설되고 파주군청이 파주읍에서 문산으로 이전되면서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가 됐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7월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되었지만 부분적인 교전은 계속되었다. 작전 지역이었던 임진강 주변인 문산(당시 임진면)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민간인 출입이 제한됐다.
이에 따라 1953년 파주군청을 포함한 모든 행정기관이 금촌(당시 아동면)으로 임시 이전하였지만 수복이 늦어지면서 금촌에 완전히 머무르게 된다. 당시 문산에서 금촌으로 이전한 기관들은 군청, 지방법원(등기소), 세무서, 경찰서, 소방서 등이었다.
문산에서 이전한 임시 군청은 금촌역 앞 인근에 분산되어 있다가 현재 시청이 있는 아동리 마무리골로 이전했다. 청사 부지는 4,300 ㎡(1,300평)이었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청사를 건축하고 내무과와 산업과 두 개과가 입주했다. 행정업무가 점차 확대되자 식산과, 건설과, 공보실, 감사실 조직이 추가로 배치됐다.
마무리골(馬戊洞)은 한자로 마무(馬戊·馬茂·馬武)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된다. 조선조 1502년(연산군 10)까지 군마훈련장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라 하여 마무리라고 전해 내려온다.
청사 신축 및 확장
현재 청사는 1950년대에 사용하던 청사를 철거하고 1976.6.22일에 본관을 신축했다. 처음 신축된 본관은 2층으로 지어졌다가 1980년대에 1개 층을 증축하여 현재처럼 3층이 됐다.
당시 인구 증가로 행정업무가 증가되면서 청사 공간부족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1980년경 군청 주변의 토지중 현재 도로 건너편 별관과 시청 뒷편의 의사당, 청사 앞 주차장을 포함한 사유지 7,500평이 경매로 나왔다.
이 토지는 금촌 아동리 출신이 서울에서 제분업을 경영하다가 부도로 국세를 체납하여 경매로 매각하게 됐다. 당시 파주군은 1,2 차 유찰 상황을 파악하고 3차에 응찰하려는 민간인을 설득해 포기시키고 760만원에 낙찰 받았다.
이 부지로 본관 뒷편으로 이어지는 신관도 추가로 건축되었으며 이 건물 3층은 1991년도 지방의회가 개원되면서 의회 사무국과 의회 본회의장으로 이용됐다.
현재 시민회관과 금촌도서관, 종합민원실 부지는 임야로서 토지소유자가 1988년에 건축 허가를 추진하고 있었다. 건축허가를 추진하던 민원인에게 군청 옆에 허가가 불가하다는 이유로 파주시는 시유지와 교환을 협의했다.
이때 구 한국전력파주지점 맞은 편에 있던 시유지 300평과 개인 소유 임야 2000평을 교환했다. 민원인에게 교환된 토지는 파주군이 교환받은 토지보다 가격이 비쌌다. 교환된 대지는 주유소를 설치하여 운영하다가 2004년 오피스텔 건물도 바뀌었다.
현재 종합민원실은 1996년 아동동 산30-1 부지에 지하 1층, 지상2층 규모로 사업비 28억원을 투입하여 신축했다. 종합민원실은 1997.5.9일 개관하면서 인허가 민원부서를 집중 배치하고 무료법률상담실, 취업정보센터를 운영하면서 '시정정보센터'라고 불렀다.
파주시는 노후된 시청사 건물을 2007년에 내외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했다. 시청 진입도로도 서쪽 사거리 방향에서 현재 시청로와 직각이 되도록 변경 했다. 폐쇄된 정문 방향에는 인도를 개설하고 주차장 주변과 함께 녹지공간을 조성했다.
2017년도 기존 청사의 면적이 자치단체 청사 면적기준에 34% 정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파주시는 부족한 청사 공간 확보를 위해 기존 종합민원실 옆으로 1,000㎡정도 부지에 2층 규모로 2017년 3월 증축했다. 2018년 1월에 준공하여 복지동으로 명명하고 복지와 인허가 관련부서를 배치했다. 증축과 관련해 토지매입과 건축물 공사에 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공개 일화
파주시청의 풍수
파주시청은 동쪽에 있는 학령산을 배산으로 하고, 금촌동을 휘감아 도는 금릉천을 임수하고 있으며, 안산은 교하동 서쪽에 있는 장명산을 취하고 있다.
금촌동으로 보면 파주시의 주산인 월롱산이 남쪽으로 파주시를 품고 있고, 월롱산 좌측 산줄기는 월롱면과 광탄면으로 이어진다. 우측 산줄기는 파주시 검산동을 지나 탄현면 법흥리까지 연결된다.
오두산은 한북정맥의 서쪽 끝이고, 한북정맥이 남하하여 만들어진 서울과 북상하여 만들어진 적성의 끝점을 연결하면 삼각형의 형태가 되는데, 이 삼각형의 중심선에 흐르는 용맥이 월롱산을 만들었다. [1]
군청강당 결혼식장 이용
금촌 KT 건물 건너편에는 6.25 전쟁이 끝나고 금촌의원이 개원했다. 이 병원의 김주일 원장은 '금촌 기록화 사업' 인터뷰에서 1956년에 파주군청 강당에서 결혼식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군청 강당은 행정적인 업무만 할 수 있는 곳이다. 그 당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파주군 내무과장이 경기도청에 결혼식 사용허가를 받았다고 한다.<2017, 파주 금촌마을의 회상과 기록>
파주시 청사 이전
2022.6.1일 지방선거에 출마한 김경일 파주시장이 현 청사를 금촌C3 블록으로 이전한다는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파주시청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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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 2017, 파주 금촌마을의 회상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