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하우즈(Camp Howze)는1951.11월 조리읍 봉일천리 79-173번지 일원에 미 해병 1사단 본부로 건설된 기지이다. 파주시는 해당부지를 근린공원도시개발사업으로 나누어 개발하고 있다.

2007년 캠프하우즈

부대 유래

이 지역은 현재 봉일천4리 지역으로 송암동 또는 솔바위골로 불렸으며 캠프 하우즈가 주둔한 부지는 송암 조병학(曺秉學, 한성 정미소 사장, 1884~1942)[1]의 토지의 일부로 여름별장이 있었다.

조병학은 이 지역 일대의 13만평 부지를 송암농장으로 운영했고 한국 최초로 농지를 경지정리하는 영농 방법을 이용했다. 1951.11월 미해병대가 송암농장을 본부로 삼자 조병학 가족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부대명 '캠프 하우즈'는 1920년대 1기병대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L. 하우즈(Robert Lee Howze) 소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부대 변천

미 해병1사단 본부가 처음 주둔하다가 1955. 3월 미 보병 제 24사단과 교대했다. 이 부대는 한국전쟁때 새로 개발된 반 원통단면의 아연도금 강철경량 조립식 막사를 처음 사용했다. 보병 제 24사단은 1957년 철수하고 1기병사단 본부가 1965. 6월 말까지 주둔했다.

1957.1월 캠프하우즈, 사진 파주모던타임즈3권

1기병 사단은 1965. 7. 1일 제2보병사단에게 주둔지를 인계했고 사령부로 사용하다가 1971. 3월에 동두천의 케이시 기지로 이동했다.

사령부 본부 이전 이후 미군 제2사단 3여단은 판문점에 배치되어 있는 유엔 대표단과 DMZ 지역에 대한 보호를 위해 1992.10. 1일까지 주둔했다.

부대 시설

1기병사단은 부대 입구 주변의 저수지를 매립하여 연병장을 조성했고 부대이름을 1950. 9. 4일 명예훈장을 받은 1기병사단 8공병연대 소속 멜빈 브라운 일병의 이름을 따서 ‘브라운 필드(Brown Field)’ 라고 명명했다. 그 후 1960년에는 극장과 체육관 등 주요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미 2사단 공병여단은 하우즈에 본부를 두고 DMZ 주둔 부대를 지원하면서 도서관, 스낵바, 사무동 등을 건설했다. 반환 당시 327개 건물이 남아 있었거 이 중 반영구 건물 118개동, 임시 건물 56개동이며 1950년대 건축된 44동, 1960년대 43동, 1980년대 62동 등의 건물이 남아 있었다.

부대 개발

사업계획 부지

캠프하우즈는 조리읍 봉일천리 79-173번지 일원 61만㎡(18만평)으로 미보병 2사단 사령부와 공병여단 본부 및 제44공병대대가 주둔했다. 공식적으로는 1953.8.13일 한국정부가 미군에 주둔지를 공여하고 2004년 한국군에게 이양되었다가 2007. 4.3일 반환 받았다.

파주시는 2009년부터 미군공여구역법에 의해 2개 구역으로 나누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캠프 하우즈가 주둔했던 임야는 파주시가 직접 공원을 조성하고 봉일천 4리 지역과 통일로변 농경지는 공모를 통하여 민간사업자가 도시개발 사업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련 정보

사진 자료

이슈 유튜브


더보기

  • 키워드: 캠프, 하우즈, 봉일천, 조병학, 통일로, 2사단, 미군


자료 출처


  1.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경제분야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