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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 성병진료소의 과거와 현재

통일로의 문산읍 선유리 신성주유소 사거리에서 파주읍 방향으로 두산위브아파트 맞은편에는 폐허로 남아 있는 ‘문산성병진료소’ 가 있다. 이 진료소는 1960년대 전국에 설치된 109개 중에 하나로 단독건물로 남아있는 유일한 진료소이기도 하다.

문산 성병진료소 개소식-출처 파주바른신문

이 낡고 방치된 건물은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투력 유지와 외화(달러) 획득을 목적으로 주도했던 기지촌 성병 관리 정책의 씁쓸한 흔적이다. 당시 파주는 전체 주한미군 5만여 명 중 2만 명이 주둔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미군 부대가 위치했으며, 용주골이나 선유리 등 거대한 기지촌이 형성된 지역이었다. 정부는 기지촌을 ‘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성매매를 묵인했고, 여성들을 공식적으로 ‘위안부’라 칭하며 철저히 통제했다. 겉으로는 질병 예방을 위한 보건 복지 정책을 표방했으나, 실상은 여성들의 건강이나 인권보다는 미군의 안전을 우선시한 매우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제도였다.

국가 정책의 도구로 전락했던 파주 지역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일상적인 감시와 폭력의 연속이었다. 여성들은 국가의 엄격한 규율 아래 일주일에 1~2회씩 지정된 요일에 강제로 성병 검진을 받아야만 했다. 하루에 400~500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몰려 속옷도 입지 못한 채 3시간 만에 산부인과 의자에서 검사를 마쳐야 했을 정도로 그 과정은 열악하고 수치스러웠다.

만약 검진을 받지 않아 보건증에 확인 도장이 없으면, 공무원과 경찰은 불시에 클럽을 단속해 여성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였는데 이를 ‘토벌’이라고 불렀다. 검사에서 탈락한 이른바 ‘낙검자’나 미군으로부터 성병 감염 매개자로 지목당한 여성들은 철창과 경비가 있는 수용소에 강제로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씩 격리 수용되었다.

1978년경에는 문산성병진료소 외에도 파주읍 연풍리의 ‘주내 성병진료소’와 감염자를 격리 치료하는 금촌 로터리 부근에 ‘금촌 성병관리소’가 성병관리 업무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당시 성병관리소와 성병진료소는 파주군 보건소 관할으로, 파주 관내에 보건증을 소지한 4천 명이 넘는 미군 위안부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관리했다. 

파주읍 소재 주내 성병진료소 개소식 -출처 : 파주바른신문

1960년대 초반 파주에만 연풍리, 선유리, 장파리 등 총 7곳의 성병진료소가 운영될 만큼 파주의 기지촌 규모는 방대했으며, 1973년 초리골의 제1성병관리소와 용주골의 제2성병관리소가 금촌으로 통합되면서 파주 전역의 낙검자들을 감금 치료하는 집중 수용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여성들이 ‘몽키하우스’ 혹은 ‘하얀집’이라 불렀던 이곳에서는 고단위 페니실린이 강제 투여되었고, 극심한 통증은 물론 항생제 과민성 쇼크로 사망하는 여성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만큼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이었다.

기지촌 수용소 밖의 삶도 처참하긴 마찬가지였다. 파주 선유리나 용주골 일대에서 여성들은 좁고 열악한 하꼬방(판잣집)에서 생활하며 포주의 착취에 시달렸다. 이들은 미군의 구타와 폭력, 인종 차별적 갈등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지만,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 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명분보다는 경찰과 지역 사회로부터 ‘개 취급’을 당하며 사람다운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극심한 멸시를 견뎌야 했다.

기지촌 성병 관리 정책은 한미동맹과 경제 성장이란 미명 아래 여성의 신체적 자유를 억압하고 성매매를 국가가 방조하고 조장한 명백한 국가 폭력이자 중대한 인권 침해였다. 2022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은 국가의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강제 격리 수용 행위가 위법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현재 문산성병진료소는 문산읍 선유리 666-4에 위치하고  대지 197㎡에 건물 166㎡로 땅은 기획재정부, 건물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이 토지는 당시 파주군이 1989.8.12일 등기하고 건물은 1986.5.7일 소유권이 보존됐다.

건물은 2008.8.11일 개인에게 2억3천만원에 매매되었고  2024.12.11일 서울시에 소재하는 주식회사에 2억7천만원에 소유권이 이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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