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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온도차 – 신수현

신수현 작가

9월 중순으로 접어드니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다. 이쯤 되면 자연스레 온기가 그리워진다. 나는 따뜻함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무척이나 갈구하는 편이다. 추운 겨울이야 누구나 난로를 찾겠지만, 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도 한결같이 따뜻함을 고집한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사람들을 일컫는‘얼죽아’라는 신조어도 생겼다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더워 죽어도 따뜻한 음료를 마시는 쪽이다.

여름철 남의 차에 타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빵빵하게 틀어진 에어컨 바람에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나는 슬그머니 시트 열선 버튼을 누른다. 더위를 몹시 타는 동행인들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차가운 공기를 견디기 위해 엉덩이와 등이라도 따끈하게 데워두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열선 버튼을 켜는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별나다는 눈빛을 보낼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한껏 움츠리게 된다. 마치 혼자만 외딴섬에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괜스레 쓸쓸해지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적부터 유난히 몸이 차가웠다. 겨울만 되면 내 손발은 그야말로 얼음장 같았다. 그건 비유가 아니라 실재였다. 누군가 내 손을 잡으면 “에구, 얼음을 잡고 있는 것 같네!” 하며 흠칫 놀라 손을 거두어가곤 했다. 가족 중에서도 나만 유독 그랬다. 아버지의 손은 항시 훈훈한 난로 같았고, 오빠와 남동생의 손도 늘 미지근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언니 둘 역시 적어도 차갑지는 않았다. 왜 나만 온 세상 차가움을 혼자 다 짊어진 채로 태어난 것일까.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그 보통의 온기가 내게만 유독 박하게 굴어 서운했던 시절이었다.

내 차가운 손발 때문에 가장 노심초사한 건 엄마였다. 손발 좀 차다고 당장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건 아니었건만, 엄마는 내 손끝의 온도에 유독 집착하듯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는 어디선가 들은 풍문으로 이름 모를 약재들을 부지런히 공수해 와 오직 나만을 위한 달여 낸 물을 내어놓았다. 생강이랑 대추를 한데 고운 물은 그나마 먹기에 수월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옛말처럼 나는 매번 쓴 물을 달고 살아야 했다. 내가 시집을 가기 전까지, 내 몸을 어떻게든 덥혀보겠다는 엄마의 집념은 단 한 순간도 식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고 성분도 알 길 없는 자잘한 까만 환(丸)들을 도대체 몇 통이나 삼켰는지 모른다. 쓴 약을 삼켜낼 때마다 ‘이번에는 정말 효험이 있을까’ 기대했던 마음은 매번 차디찬 손끝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헛된 기대가 낙담으로 바뀔 때마다 내 손발을 감싼 이 냉기가 엄마의 그 지극한 사랑마저 맥없이 꺼뜨려 버리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런 연유로 내게 따뜻함은 단순히 유별난 취향이 아니다. 온기를 누리는 이들은 절대 알지 못하는, 이 깊고 아린 차가움의 실상을 온몸으로 통과해본 자만의 서글픈 생존 방식인 셈이다.

따뜻함의 반대말은 차가움이다. 나는 차가운 감각을 질색한다. 내 인생을 통틀어 차가움을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은 십여 년 전 초겨울이다. 수술받기 위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밤새 장을 비워내고 허기진 몸으로 수술을 기다렸다. 두 개 과가 협진하는 수술이라 내 차례는 맨 마지막으로 밀려났다. 그날따라 일정이 지연되면서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얇은 수술복만 입고 들어선 통제구역 안은 서늘하기만 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수술실에는 정적과 분주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수술대에 눕자마자 온몸으로 퍼지는 극도의 차가움에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그 서늘함은 두려움과 엉켜 나를 아득한 땅속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냉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자 몸이 저절로 웅크려졌다. 마치 냉동실에 갇힌 것처럼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견딜 수 없는 추위와 공포로 떨며 나는 옆으로 누워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기적 같은 온기였다. 한 간호사가 내 등 뒤에 자신의 옆구리를 가만히 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고 따스한 체온은 나의 등과 허리를 타고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피가 얼어붙기 직전 온기를 얻은 듯한 기쁨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내 인생 가장 차가웠던 순간에 찾아온 가장 따뜻한 경험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한 줄기 빛조차 선명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서늘한 차가움이 극에 달했기에 그 작은 온기마저 온몸으로 깊이 느껴진 것이리라. 신이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체온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다. 온기는 생명의 원형이자 존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안식처다. 잠시 후 몸을 바로 눕혀달라는 요청과 함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는 절차가 다시 진행되었다. 그땐 이미 한기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단 몇 분 남짓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타인의 온기로 몸이 데워졌을 때 찾아온 것은 깊은 평온이었다. 따스함이 지닌 위대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온기는 두려움을 밀어내고 다정한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으로 다가오던 수술실의 공포조차 더는 나를 흔들지 못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병실로 돌아와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로소 살았다는 마음속에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꺼이 등과 허리를 내어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비록 일상에서 늘 마음먹은 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지라도,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삶은 한결 부드러워진다.

스물두어 살 무렵, 인생의 가장 깊은 그늘을 지나던 때가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을 겪은 후 ‘과연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온종일 쓸쓸함에 젖어 있던 날들이었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다. 퇴근길 버스에 올라 맨 뒷자리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 내 앞에 앉았던 이들이 내리기에 안쪽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이내 누군가 내 옆에 앉았지만,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시절이라 타인의 얼굴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신고 있던 조금 낡은 구두, 그 갈색 로퍼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퇴근길 버스는 멈췄다 서기를 반복했다. 옆자리의 승객은 피곤했는지 졸면서 가끔 머리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그때마다 깜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앉곤 했다. 그러다 그의 다리가 내 다리에 살짝 맞닿았는데,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따스함이 밀려왔다. 본래 나는 대중교통에서 타인과 몸이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었다. 불쾌한 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되레 그 따스한 온기에 마음이 다정하게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오랫동안 가만히 다리를 대고 있었다. 타인이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거리, 그 두 겹의 옷감 사이로 전해진 온기가 저미는 삶의 의지를 가만히 다독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서 온기를 느끼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그가 나를 직접 구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삶을 버텨내고 다시 이어가는 데 분명 힘을 보탰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에게서 받은 사소한 온정을 연료 삼아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 작고 아득한 감각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중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타인을 경계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그 무심하고 느슨한 연대 속에서 가장 순수한 위로를 얻는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어떠한 기대도 없는 스침 속에서 전해지는 온기. 그것이야말로 이 거친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다정함일 것이다.

퇴직 후 집에 머물던 어느 날, 예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나간 자리에서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을 대접했다. 출산 후 한 달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았을 만큼 좋아하는 음식이라 맛있게 한 대접을 싹 비웠다. 후배는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집에 있는 아이에게 먹인다며 포장 주문을 추가했다. 식사를 마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기차 시간이 되어 일어섰다. 역까지 나를 바래다주던 후배는 전동차를 타러 들어가는 내 손에 슬그머니 포장 용기를 쥐여주었다. 내가 미역국을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사실은 나에게 주려고 미리 포장해둔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손에 들린 용기는 여전히 따스했다. 기차에 올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용기의 온기가 옷을 뚫고 전해지자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으려 애썼지만 글썽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를 울린 것은 미역국이 아니었다. 나를 향해 미소 짓던 그녀의 따뜻한 눈빛과 마음 씨였다. 이처럼 피부에 직접 닿는 실체적인 온기든, 마음을 타고 흐르는 다정한 온기든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감각 모두 냉랭한 세상을 견디게 하는 다정한 에너지가 되어 우리 몸과 마음을 동시에 데워주기 때문이다. .

내 손은 여전히 차다. 명약(名藥)을 달여 먹어도 마른 가지 같은 손끝의 냉기까지 거두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시린 세상을 묵묵히 건너올 수 있었던 것은 곁을 지켜준 다정한 이들과 스쳐 지나가는 이웃들이 나누어 준 미소와 온정 덕분이다. 찰나의 눈빛과 스치는 마음이 건넨 그 따스함이 마음의 온도를 끊임없이 지켜주었기에, 내 삶의 기온은 단 한 번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타인과 따뜻한 눈빛이나 온기를 주고받을 때 뇌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사랑과 안식의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호르몬이 온기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온기를 먼저 건넨 사람의 뇌에서도 똑같이 생성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내 안에서 따스함이 피어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이로움을 얻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장사인 셈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건강하고 평안한 삶을 위해서라도 따뜻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돈 한 푼 들지 않으면서 나와 타인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이보다 완벽한 건강법이 또 있을까. 오늘 만나는 이웃에게 먼저 따뜻한 눈빛과 인사를 건네보면 어떨까. 그 온기 끝에서 훨씬 더 다정하고 건강해진 나 자신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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