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 미술가 회고전을 다시 보고 나서-이기상
이대원 작가의 회고전이 11월 8일에 막을 내린다. 지난 10월 11일 처음 덕수궁 회고전을 찾았을 때, 나는 그가 파주 출신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 뒤 한 달여 동안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하는 『이대원 미술가와 파주』를 썼다. 글을 쓰면서 그가 한국 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놀라운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그의 그림이 보고 싶었다. 비가 내리던 11월 첫날, 나는 덕수궁관을 다시 찾았다.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관람객이 지난 10월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더러 보였다. 대부분 젊은 층이었지만, 70대 어르신들도 그림 앞에 서 있었다. 한 젊은 연인은 이대원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작가라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좋은 작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아쉬움으로 들렸다.
미술관 현관에 들어서자 주미국 대한민국대사관이 소장한 대작 「담(秘苑)」이 관객을 맞았다. 마치 덕수궁 돌담길이 전시장 안으로 이어진 듯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우리 정서의 담장이었다.
「담」은 화려하지 않다. 그림 앞에 서니 조선 시대로 돌아가 담장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담장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무슨 까닭인지 이 담장 앞을 서성이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오색 한복을 입은 여인이 모퉁이를 돌아 나올 것 처럼.
먼저 1전시실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작가의 삶을 조명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관람객이 빽빽해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1전시실에는 주로 작가의 초기 작품과 공예 작품이 놓여 있었다. 원앙새 목각과 수묵화 분위기의 작품이 많았는데, 화려하지는 않았다.
2전시실과 3전시실에서는 전시 제목인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의 뜻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전통의 색을 붓으로 촘촘히 쌓아 올린 대형 작품들은 보는 이를 그 밝음으로 압도했다. 그림을 비추는 밝은 조명은 화면을 더욱 빛나게 했다.
전시장은 화려함과 밝음으로 가득했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나무와 들판, 연못을 새로운 시선과 기법으로 그려 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이대원 작가의 옅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쇠라의 점도, 고흐의 선도 아닌···이대원의 찬란한 색채는 어디서 왔을까? <2026.8.12, 경향신문>
그는 왜 미술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을까. 이대원은 개인전 16번 중 11번을 반도화랑에서 인연을 맺은 박명자 회장의 현대화랑(갤러리현대)에서만 열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1980~2000년대 화단에서는 이대원 세대의 근대미술을 벗어나야 현대미술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적이고 옛날 그림’, 갤러리 전시가 ‘상업적’이라는 인식까지 더해져 국공립미술관에서도 진지하게 조명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미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전통 역시 새롭게 검토되는 요즘, 소재에 그치지 않고 양식·기법·미감으로 한국성을 풀어낸 이대원의 작업을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8121113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