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루촌은 1999년부터 추진된 민통선내 정착촌으로 2004년 장단군민 60가구가 입주했다.

마을 위성사진, 구글

개요

한국전쟁 후 장단군에서 피난 나온 주민들은 '장단군민회'를 조직하여 고향에서 정착하여 농사질 수 할 수 있도록 정책마을 조성을 꾸준하게 요청했다.

1999년 경기도는 2001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세계 해비타트(Habitat)대회 유치 장소를 파주지역으로 검토했고 파주시는 현재 해마루촌 지역인 군내면 동파리를 추천했다.

파주시는 세계 해비타트(Habitat)대회를 유치하면서 행사부지를 장단군민 정착촌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으로 사업을 추친했다.

여건

한국전쟁 직후부터 대성동과 통일촌은 정착마을로 조성되어 152세대 660여명이 거주하며 영농을 전업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통선 이남에 거주하는 장단군민은 영농 목적으로만 민통선 출입이 가능했다.

장단군민 일부는 토지대장과 개성등기소의 등기권리증으로 소유권을 회복하기 위해 미수복지구에 대한 지적복구와 함께 정착촌 조성을 요청했다. 장단군민회는 1991년 정착마을 조성 청원서를 청와대와 국방부, 당시 여당인 민자당과 국회국방위원회에 제출했다.

정책적으로 정착촌 조성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군부대는 작전상 이유로 강력히 반대를 했으며 파주시 입장에서도 국도비 사업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아 사실상 포기한 상태이다.

세계 해비타트 대회 유치

1999년 경기개발연구소가 세계 해비타트(Habitat)대회 개최지를 검토하면서 파주시를 방문했다. 파주시는 민통선내 동파지구를 추천했고 몇일 후 경기도는 파주지역이 개최 적지라고 결정했다.

파주시는 민통선내에세 세계대회가 개최된다는 소문이 나면 지가(地價)가 상승할 우려가 있다고 토지 매입자금 지원을 경기도에 건의했다. 경기도는 토지매입 자금으로10억원을 교부하고 파주시는 동파지구에 토지 30,485평을 구입했다.

당시 송달용 파주시장은 1999.3.22일부터 필린핀 마닐라에서 개최되는 세계대회에 한국 해비타트 봉사단 200여명과 함께 참석했다.

파주시는 2001년 해비타트 세계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기독교인 중심으로 파주시 해비타트 지부를 조직했다. 당시 조직은 이사장 이용순 목사, 실행위원장 장철수 장로, 상임이사는 8명으로 이순웅 목사, 그리고 정인철, 강연진, 양상규, 정산준, 박종철, 권경환, 이봉춘 목사를 선임했다. 또한 장로이사로 남궁육, 심광용, 정행직, 이인기, 김찬주와 우춘환 성도를 임원으로 구성했다·

세계 해비타트는 이사회를 개최하여 파주 예정지가 세계 각국의 봉사자 약 7,000여명의 숙식(宿食)문제와 미수복지구의 지뢰 등 군사적 안전문제로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어렵다고 결정했다. 이에따라 행사 개최지를 진주, 태백, 군산, 경산, 파주 등 6개 지구로 분산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2001년 세계 해비타트 대회는 파주를 포함한 6개 지역에서 8월5일부터 11일까지 지미카터Jimmy Carter전 미 대통령 부부등 29개국 총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해비다트 대회는 파주지역에서 개최되지는 않았지만 건축봉사는 통일촌 인접지역에 12세대분의 대지를 확보하고 당시 8세대에 대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중에는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격려차 방문했다.

정착마을 추진

파주시는 세계 해비타트대회 개최 부지로 매입한 동파리 100,777㎥ (30,458평)을 경기도와 협의하여 정착마을 부지로 사용하기기로 결정했다.

민통선내 동파리 정착마을 예정지는 군부대 동의가 필수적이다. 파주시는 관할 부대 1사단과 1군단, 국방부에 정착마을 조성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국방부는 민원해결 차원에서 국방부 작전처장 주관으로 관계 기관 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회의는 국방부 작전처장실에서 개최됐고 육군본부 작전과장, 1군단 작전참모, 1사단 작전참모와 행정기관의 파주시장, 경기도관계관, 통일부 직원이 참석했다.

파주시는 민통선 지역에 이미 대성동과 통일촌에 민간인이 입주하고 있고 민통선 이남에 거주하는 장단군민에 대한 출입영농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착촌 건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군관련 참석자는 시종일관 민통선 북방에 정착촌을 조성할 경우 평시 경계 작전과 전시 주민철수통제(住民撤收統制)문제로 입주영농은 안 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정착촌 조성 회의를 주관한 작전처장이 정착촌 조성을 반대할 것으로 예상한 송달용 파주시장은 전쟁발발시 군잔적 계획에 따라 민통선 주민에 대한 후방 대피훈련 등 30여년간의 경험을 설명했다. 송 시장은 마무리 발언으로 군작전참모가 민통선 거주민이 작전에 지장을 준다고 발언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했고 작전처장은 결론을 보류했다.

국방부는 파주시 동파리 현장회의를 국방부 주관으로 개최한다고 통보했다가 회의 주관 부대를 관할 부대인 1군단으로 이관했다. 당시 1군단장은 박영익 중장으로 교하면 송촌리 출신이다. 1군단이 국방부에 지역 관할권을 요청한 것으로 보이며 1사단을 통해 '정착마을'을 '수복마을'로 변경하고 동파리 정착촌 조성 사업을 승인했다.

마을전경, 사진 파주시

수복마을 공사는 택지매입비, 택지조성비와 공공시설 건립비, 도로포장 등 총 80억 1,100만원이 투입되어 조성됐다. 택지조성 과정에서 지뢰 662개를 제거하고 집집마다 차도가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건물 형태는 건물 외관이 중복되지 않도록 파주시가 제시한 모형 중에 선택하여 건축하도로록 했다.

마을 명칭도 .‘아름다운 해가 뜨는 언덕마을’이라는 뜻의 ‘해마루촌’으로 정하고 입주할 세대도 60가구로 확정했다.

파주시는 택지 조성을 마치고 조성원가 산정시 국도비로 지원받은 사업비는 제외하고 시예산으로 집행한 10억원만 반영했다. 따라서 전체 사업비로 산정한 조성원가 평당 65만4천원을 시비만 적용한 8만1500원으로 결정하고 2001년도에 입주자에게 부지를 분양했다.

해마루촌 현재

해마루촌 입주는 장단 지역출신으로 일정 면적 이상의 농지를 소유 해야만 입주 자격을 부여했고 소유권 이전 등의 제약이 있었다. 2012년부터는 입주 자격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부동산매매가 가능하게 됐다.

해마루촌 마을 전체를 위성으로 찍은 사진이 높은 음자리표 모양과 흡사하여 전국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조성 당시 조감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도로가 포장되고 건물이 입주되면서 더욱 선명하개 나타나면서 높은 음자리표 마을이 됐다.

이 마을은 50여년간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으로 꼬리조팝나무, 얼룩 동사리 등 희귀 동식물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마을에서 DMZ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문의처 031-952-9127)

여론 여담

예산 확보 뇌물사건

2001년 추석을 보름 앞두고 송달용 파주시장은 내무부 교부세 과장과 실무계장을 만나 민톨선에 정착촌 조성 사업내용을 설명했다. 설명을 마치고 고향 갈 때 사용하라고 교부세 과장에게 여비를 전달했지만 적극 사양했다. 송 시장은 여비를 책상서랍에 억지로 넣어 주고 교부세과에서 나왔다.

교부세과에서 나오자마자 송 시장을 미행했던 국무총리실 감사관은 교부세과장과 실무계장 서랍에서 여비 봉투를 압수했다. 송 시장은 감사관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확인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송 시장은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에게 민통선 사업 추진으로 방문한 동기를 설명하고 선처를 부탁했다. 저녁 늦게 내무부 교부세 과장이 송 시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당신 때문에 나의 앞날이 막혔다 하며 나에게 책임을 져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공박(攻駁)했다.

당시 내부부 교부세 과장 직책은 국장으로 진급하는 영 순위 보직이다. 다음 날 교부세과장은 다시 전화를 했다. 김정길 내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서 징계를 받지 않도록 건의해 달라는 것이었다.

즉시 내무부장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장관 면담을 요청을 했다. 장관과 같은 정당의 민선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 시장은 다음 날 10시에 장관을 만나 민통선 북방의 수복마을에 대한 사업내용을 설명하고 내무부 교부세과 과장과 계장이 여비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송 시장이 억지로 서랍에 넣은 것이니 징계를 받지 않도록 선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후 교부세과장은 징계 없이 진주시 부시장으로 좌천되었고 여비는 총리실에서 파주시로 반송되어 왔다. 진주시 부시장으로 근무하던 교부세 과장은 고향인 남해에서 군수로 출마 선언을 했고 남해 군수로 당선이 됐다. <송달용 전 파주시장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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