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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본 임진강 70년-대한민국 유일의 선단제 이야기[3편]

3편: 황복부터 참게까지 — 강이 가르쳐준 어부의 기술

4. 운영 방식

4.1 동력(모터) 규정

임진강 어선의 동력 규정은 구역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25사단 구역인 적성과 파평은 마력 제한이 없으며 자율어업으로 운영된다. 자유교 선단은 30~40마력까지 허용되며 통제어업에 속한다. 2~4선단인 임진, 장산, 사목 구역은 30마력 이하로 제한된다. 가장 엄격한 곳은 5선단인 내포리로, 15마력 이하로 제한된다. 이는 내포리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구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교하강과 공릉천은 군 통제가 없어 마력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내포리 5선단에 대한 통제가 가장 심한 이유는 군부대 바로 옆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김병수의 증언에 따르면 5선단은 물살이 좋지만 마력수를 높일 수 없다.

4.2 짝꿍(2인 1조) 제도

1사단 통제 구역에서는 짝꿍, 즉 2인 1조 조업이 의무이다. 김병수의 증언에 따르면 짝꿍 제도는 강의 출입을 군부대에서 통제하니까 서로 보호하는 차원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군사 보호시설이기 때문에 군부대 통제를 받는 것이지만, 임진강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정도 짝꿍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의 하나이다. 한편 박광식의 증언에 따르면 주월리, 즉 25사단 구역에서는 단독 조업이 가능하다. 다만 문산 이남 구역에서는 모두 동력선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혼자 나갈 수 없으며, 사전에 전화 신고를 해야 출입이 허용된다.

4.3 면세유 배정

면세유는 마력수에 따라 다르게 배정된다. 15마력은 이틀을 쓸 수 있는 양을 30마력이 하루에 쓰며, 60마력은 반나절만 쓸 수 있다. 2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번 조업에 40까지 들어가며, 한 번 조업하면 약 4시간이 걸린다.

4.4 산란 서식장 운영

매년 4월이면 산란기 어종을 위해 강에 유초인 인공 산란 시설을 설치한다. 시에서 도움을 받아 어민들이 직접 설치하며, 산란이 끝나는 6월 말쯤 철수한다.

5. 임진강의 어법

5.1 산란기 때 바다에서 합수역으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황복은 곡우에서 망종까지 면바다에서 임진강의 합수역으로 산란하러 올라왔다. 산란장은 파평면 장파리에서 적성면 장좌리에 걸쳐 있는 임진강 중류 백모래밭이었다. 파평면 장파리에서는 황복을 ‘뭇’이라는 삼지창으로 잡거나 그물을 걸어 잡았다. 한 사람은 삼지창을 들고 한 사람은 노를 저어, 황복이 보이면 잠시 배를 멈추고 삼지창을 날려 쏘아 잡는 방식이었다.

눈치는 곡우 무렵에 면바다에서 임진강의 합수역으로 산란하러 올라왔다.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서는 “눈치는 못치라 일컬일 때 바다에서 갈이하러 온다”는 생업 속담이 전승되었다. 적성면 두지리에서는 그물로,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서는 2~4개의 바늘이 달린 공갈낚시로 알을 슬고 있는 눈치를 낚아챘다.

5.2 산란기 때 강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물고기

숭어는 청명 때 어린 숭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와 성장하고, 대설과 동지 안팎에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내려갔다. 파평면 장파리에서는 청명 인후에는 그물로, 성장기와 산란기 내려갈 때는 ‘오리’라는 어구로 걸려 잡았다. 오리는 12m 줄에 갈퀴를 꿰어 만든 어구로, 가운데는 취고리 모양, 양쪽은 미늘에 날을 세운 낚시줄을 갈고리에 달았다. 그 위에 새하얀 소의 뼛조각을 붙여 숭어가 그 위를 지날 때 재빨리 낚아채면 갈고리에 꿰어져 잡혔다.

뱀장어는 산란을 위해 먼 바다로 내려가고, 그 새끼는 입하와 소만 사이에 모천회귀하여 모천에서 성장하였다. 적성면 두지리에서는 어롱에는 ‘뭉칫질’, 겨울에는 작살 어법으로 뱀장어를 잡았다. 뭉칫질은 길이 3.6m, 폭 4.5cm의 방추형 장대인 ‘뭉칫대’에 ‘바닥줄’, 즉 바느질로 두 발 길이에 20~30마리의 지렁이를 꿰어 만든 줄을 묶어, 강바닥에 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뱀장어가 지렁이를 먹으려고 바닥줄을 일으면 미늘에 걸려 잡히는 방식이었다. 겨울 뱀장어 작살 어법은 ‘써리’라는 곡몽이로 강의 얼음장을 뚫고 작살로 쏘아 잡는 것이었다.

참게는 추분 인후에 임진강 하구에서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내려갔다. 파평면 장파리 주변에서는 가을에 ‘게막’을 설치하였는데, 수수담으로 엮은 발을 V자 모양으로 쳐 놓고 마주치는 지점에 항아리를 묻어두는 방식이었다.

적성면 두지리에서는 ‘게랍’과 ‘게남’ 어법이 전승되었다. 게남은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볏집으로 엮은 줄에 떡잎쪽 15cm 길이의 솔에 수숫대를 매단 것으로, 강을 가로질러 설치하였다가 30분 간격으로 들어 올리며 참게를 잡았다. 참게는 야행성이라 밤에만 게남을 들어 올렸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 이러한 어법을 ‘게밤’이라 하였다.

5.3 정착성 물고기

잉어는 청명에서 소만 사이에 수심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이동하여 수초 위에서 산란하였다. 겨울에는 수심 깊은 곳에서 활동하여, 잉어잡이는 산란기와 월동기에 양성하게 이루어졌다. 파평면 장파리와 적성면 두지리에서는 산란기에는 ‘뭇’ 즉 삼지창으로 쏘아 잡고, 월동기에는 ‘방그물’이라는 그물을 설치하였다.

방그물의 어장은 임진강의 진통 통산리에 있는 ‘구내기’였다. 그물 규모는 그물코 11cm, 폭 1.2m, 길이 18~27m였다. 잉어를 그물 안으로 몰아넣기 위해 척경 50m, 높이 180m, 무게 50~60근의 통나무 위에 동아줄을 걸어 묶은 ‘머리토막’을 만들어, 두 사람이 동아줄을 잡아 둘렸다가 얼음장 위로 내려쳤다. 소리에 놀란 잉어가 방그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 이러한 어법을 ‘현록서포해법’이라 하였다.

쏘가리는 입하와 소만 사이에 여울 자갈밭에서 산란하였다. 발달한 여울로는 ‘고창포 여울’, ‘두지리 여울’, ‘주월리 여울’이 있었다. 적성면 두지리에서는 여울에서 몽 동이를 잡고 기다리다가 산란하러 올라오는 쏘가리를 몽 동이로 때려잡았다.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서는 저녁에 견지낚시를 강물에 던졌다가 아침에 걸어 올리며 낚았다. 이 어법을 ‘덧물이’라 하였다.

5.4 일제 도입 어법과 현대 어법

장석진의 증언에 따르면 정치망 종류의 어법은 일본인들이 도입한 것이며, 이후 국회 입법을 거쳐 파주에서 양성화되었다. 반면 한국의 전통 어법은 자망이며, 초크 자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자망은 석유화학 제품이라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고 한다. 자망은 겨울에 사랑방에서 아저씨들이 모여 짜서 만들었다.

전통 어법으로는 자망(일본어로 다깨바리), 초크 자망, 낭장망(개매기), 통발, 게남, 뭉칫질이 있다. 일제 도입 어법으로는 정치망과 삼각망이 있다. 현대 어법으로는 약 10년 전 합법화된 초크 그물이 있다. 한편 겨울 얼음장 어업으로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대나무에 줄을 묶은 ‘열로 줄’을 사용해 어망을 얼음 속으로 밀어 넣는 공동 작업이 전승되었다.

6. 어종과 구간별 분포

임진강에서 많이 잡히는 물고기는 잉어, 붕어, 숭어, 황복어, 뱀장어, 메기, 쏘가리, 참게 등이다. 장석진은 임진강 어종이 상류로 올라갈수록 민물고기 비중이 높아진다고 분석하였다.

상류인 적성 구간은 거의 민물 어종이며, 참게·뱀장어·쏘가리·모래무지·토종 민물고기·붕어·잉어가 주를 이룬다. 파평 구간은 바다 어종과 민물 어종이 50대 50으로 섞여 있으며, 황복이 소득의 30%를 차지한다. 임진리도 바다와 민물이 절반씩 섞여 있다. 3~5선단인 장산리에서 내포리에 이르는 구간은 바다 어종이 80%를 차지하며, 기수 어종이 20%이다. 주요 어종으로는 실뱀장어, 숭어, 농어, 새우, 바다새우 등이 있다.

황복은 시대에 따라 가치가 크게 변한 어종이다. 박광식의 증언에 따르면 그전에는 황복을 발로 차서 버렸다고 한다. 독이 있어 못 먹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 아래쪽에서 한 사람이 200마리씩 잡을 만큼 흔했지만 독 때문에 팔 데가 없어 처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독 있는 황복이 민물고기 중 최고가에 팔린다. 장석진은 황복의 가치 변화를 화학적으로 설명한다. 황복이 민물에 올라오면서 독이 순화되고 감칠맛이 달라지며, 숙성을 시키면 섬유질이 글루타민산으로 바뀌면서 단맛이 나기 때문이다.

종어는 임금 왕(王) 자가 머리에 그려진 귀한 어종으로, 금강·한강·임진강에만 나타났으나 현재 멸종 상태이다. 내수면연구소가 위치한 금산에서 200마리를 찾아 자주 부화시켜 방류를 진행 중이다.

7. 유통과 판매

장석진은 임진강에서 잡은 민물고기 유통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중도매상을 거쳐 나가는 경우이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문산직판장이나 적성직판장에서 출하한다. 둘째는 매운탕집 직거래이다. 셋째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거나 밀키트로 가공하여 전국으로 유통하는 방식이다.

매운탕 식당 운영은 임진강 어부 가구의 주요 부업이다. 김병수는 매운탕집을 운영하면서 1사단 부사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는 (구)파평면사무소 자리에서 초창기에 매운탕집을 운영하였는데, 1사단 전방을 드나드는 선임하사들이 술을 좋아해 황복을 1톤 이상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그가 잡은 황복은 그 시기 예약 손님이 많아 일본 기자들까지 와서 회 뜨는 법을 배워 갔으며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하였다.

임진리에서 ‘임진강집’ 매운탕 식당을 운영하는 이순찬은 임진나루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현재 위치로 올라와 60여 년이 넘도록 어부 생활과 함께 영업을 하고 있다. 14살 때부터 어부가 되었던 이순찬은 1993년 6월 KBS ‘맛따라 길따라’ 프로에 소개되면서 임진강 주변에서 유명한 매운탕 집으로 소문나있다.

자유교 선단장 문무곤의 부인도 매운탕 식당을 운영한다. 문산 호수 상가에서 ‘큰 민물매운탕’이라는 상호로 작은 매운탕집을 하고 있다. 문무곤은 잡은 고기를 직접 가져다 매운탕집에 공급하며, 부족할 때는 다른 어부에게서 구입하기도 한다고 한다.

웅어는 중국으로 수출 계약이 체결되었다. 대부분 수산물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가운데, 임진강 웅어는 5~6월 장파리까지 회유하는 자원을 활용해 역수출되는 품목이다.

임진강은 한 번도 멈춰 흐른 적이 없다. 분단의 철조망이 강을 가로질러도, 군의 통제 아래 짝을 지어 배를 띄워야 했어도, 어부들은 강을 떠나지 않았다. 1선단이 둘인 까닭과 30마력의 모터 규정은 분단이라는 시대가 강 위에 새긴 무늬다.

그러나 강에는 다른 시간도 흐른다. 발로 차서 버리던 황복이 최고가가 되고, 멸종된 종어를 다시 부화시키는 어부의 손길이 함께 흐른다. 임진강 어부의 70년은 통제와 회복, 단절과 이음의 시간이었다.

어부의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젊은 발길은 끊겼다. 이 기록이 강 위에 떠 있는 마지막 세대의 목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어부는 오늘도 배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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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 서유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조선후기
  • 『동아일보』 1950년 1월 15일자 「임진어부계 잉어잡이」 기사
  • 『파주시지 4권 파주사람』, 파주시, 2009
  • 『여기, 임진강 어부』, 기억사전 기획, 경기문화재단 지원, 2022년 11월 25일 발간
  • 「인생의 파노라마를 다시 임진강으로 불러요 – 장석진」, 채록집(2025)
  • 「그래도 임진강 덕을 많이 봤죠 – 박광식」, 채록집(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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