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이 – 김태회
‘더듬이’는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기관, 후 · 촉각 따위를 맡아보며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라는 명사다. 한마디로 안테나다. ‘더듬다’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져보며 찾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 더 의역해서 쓰는 말 중에 ‘음험한 마음으로 이성의 신체를 무작위로 만지는 천박한 행위’라는 뜻도 있다.
우리 고향에는 큰 내(川)는 아니지만 월롱산에서 발원하여 공릉천에서 합수(合水)하는 삽교천이라는 개울이 있다. 또 하나는 월롱산의 다른 한 줄기에서 발원하여 흐르다 삽교천에서 합수하는 개울이다. 우리는 이 두 줄기의 개울을 규모에 따라 자연스럽게 큰 갱굴, 작은 갱굴이라고 부른다.
이 개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용상골 앞 벌판에는 나름 넓은 논이 펼쳐져 있으니 반드시 물이 필요한 터이다. 용상골의 젖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뭄을 대비하여 개울을 막아 저수시키는 웅덩이(최 서방 네 물 푸는 응데이라고 불렀다)를 두어 군데 만들어 놨다. 근처 개울에서 제일 깊다. 물론 우리들은 목적이 어디 있든지 간에 그 웅덩이에 가서 멱을 감곤 했다. 그 지저분한 물에서 말이다.
가물다가도 때가 되면 장마가 지고 폭우도 쏟아진다. 그러면 쫄쫄 흐르던 개울물은 순식간에 노도와 같이 뻘건 큰 물줄기를 만들며 하류로 흘러간다. 지금이야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 엄청 두려웠다. 아마 그 당시는 산이 헐벗어 토사가 함께 쓸려 내려오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논·밭둑이 끊어지고 개울둑이 무너지면서 물줄기가 바뀔 지경이 되기도 한다. 비가 그친 후 농가마다 혹은 마을 공동으로 수해복구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무너진 논·밭둑과 개울둑에 말장을 박고 거섶을 대는 등 복구가 한창일 때, 개울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물이 적잖게 내려간다. 그런데, 폭우 때는 오물과 함께 흙탕물을 내려보냈지만, 어느 틈엔가 강에서 올라온 송사리는 물론 붕어, 피라미, 미꾸라지, 메기들이 떠다닌다.

나는 형들을 따라 어른들이 수해복구 하느라 땀 흘리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그 개울로 철사로 얽은 체나 어레미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 하지만 조금 깊다 싶은 물에서는 어레미 같은 도구로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손으로 ‘너개’를 더듬어 잡는다. 너개는 개울가 물밑에 나무뿌리나 풀뿌리가 흙과 엉겨 붙어 둔덕처럼 뚝 튀어나온 부분이 생기는데, 그 뿌리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긴 공간을 말한다. 여기가 물고기들의 은신처나 훌륭한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나 같은 어린애가 그 작은 손으로 붕어나 메기를 잡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형들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형들은 커다란 붕어나 메기도 잘 잡는데 내 손에 잡히는 놈은 하나도 없다. 어쩌다 내 손에 잡힌 놈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 놈은 내 작은 손에 잡히자마자 어느 틈엔가 ‘퍼덕’하고 내 손을 후려치고 벗어나면서, 나를 놀리듯 물 위를 유영한다.
나 혼자만 기여 없이 형들이 잡은 물고기가 든 깡통을 들고 오면서 무용담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잡을 뻔했던 붕어를 놓치고는 ‘푸드득 하는데, 이따 만한 건데, 다 잡은 건데…! ’두 팔을 한껏 벌리며 무척 아쉬워했다. 사실 내 조그마한 손으로 너개를 더듬는데 거기에 걸려드는 물고기가 어디 있을까. 그래도 붙잡았다가 내 손을 빠져나간 붕어가 눈에 삼삼하다.
요즘 FOMO 현상인지 아니면 별안간 경제 개념이 생겨서 그런지 주식 붐이 일고 있다. 그래서 모이기만 하면 대화 주제에 주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니 대화의 근간이다. 내 주변에는 주식 고수는 아니지만 중급 되는 사람은 두어 분 있고, 대부분 ‘주린이’나 하수들이다. 하수 중 한 사람이 ‘아, 그 주식 샀어야 했는데…’라며 뒷말을 줄이고 아쉬워하는 제스처를 쓴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는 아마 어떤 종목에 눈독을 들이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친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주식이 하늘 모르고 무섭게 뛰고 있었다. 후회막급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이제라도 사야 할지 모른단다. 그러면 중급 되는 상수가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들기지’,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라고 하며 저음으로 점잖게 주식 강의가 시작된다. 쥐 죽은 듯이 한참 듣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현듯 어린 시절 물고기를 더듬이로 잡을 때가 생각난다. ‘이 따만 한 건데…! ’ 물고기를 잡으려면 작은 손을 키우든가, 아니면 형들에게 잡아달라고 하든가. 그도 아니면 ‘고기잡이 체’를 잘 이용하든가. 공부를 좀 하고 덤벼들어야 할 터인데. 마음만 급해서…. 그 조그마한 손에 걸려드는 물고기는 죽은 고기가 아니면, 산 물고기 중 중에서 상 찌질이가 아니고서야.
-주린이가 주식을 한다고 하면서, 2026. 6.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