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공연장 — 목동동 산53-21번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021년 봄, 운정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낯선 도면 한 장이 돌았다. 목동동 산53-21번지에 대형복합 공연장이 들어서고, 그 앞에 ‘공연장역’이라는 지하철역까지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국토교통부가 지하철 3호선 파주 연장 계획을 발표한 직후였기에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러나 진실은 달랐다. 그 부지는 이미 2019년, 파주시 자체 타당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폐기된 후보지였다. 파주시는 긴급 브리핑을 열어 도면이 가짜임을 밝혔고, 들끓던 소문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파주에는 실제로 대형 공연장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전혀 다른 자리, 전혀 다른 이름으로다. 아파트 단지를 잠시 술렁이게 했던 유령 같은 소문의 전말을 되짚어본다. –파주콘텐츠제작소–
2021년 4월 22일, 발표
국토교통부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 수립 연구공청회를 열었다. 여러 줄의 계획 가운데 파주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한 문장이었다. 지하철 3호선(일산선), 일산 대화에서 파주 금릉까지 연장. 가칭 운정선.
2020년 9월 국토부에 제출된 민간제안사업이 이 자리에서 수정 반영됐다. 신설 역사 4개에 증개축 역사 1개, 합쳐서 5개 역사.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때보다 역사가 하나 늘었다. 노선 길이도 7.6㎞에서 10.7㎞로, 3.1㎞가 더 붙었다. 총사업비 역시 그만큼 올라갔다.
정확한 노선도, 역 위치, 착공 시기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운정신도시 가람·해솔마을 등 아파트 단지 사이로 도면 한 장이 돌기 시작했다.

도면 위의 낯선 글자
그 도면에는 낯선 역명이 하나 적혀 있었다. 공연장역.
위치는 목동동 산53-21번지 일원. 노선이 이쪽으로 휘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말도 함께 붙어 있었다. 이 자리에 대형복합 공연장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고, 철도 노선이 그 공연장을 지나가도록 짜였다는 것이었다. 사유지 개발과 철도사업이 맞물려 있다는 소문도 곁들여졌다.
이야기는 그럴듯했다. 국토부 발표 직후였고, 지도 위에 선과 역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 주민 커뮤니티를 타고 도면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늘어난 노선 길이와 역사 수까지 눈에 보이니, “왜 갑자기 이쪽으로 휘었나”라는 물음에 그 도면은 손쉬운 답을 내놓은 셈이었다.
5월 27일, 시청 기자회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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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가 움직였다. 5월 27일, 이주현 평화기반국장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지하철 3호선 파주 연장 노선(가칭 운정선)과 역이 표시된 도면은 가짜입니다.”
한 문장으로 시작한 발표는 조목조목 이어졌다. 목동동 일원에 대형복합 공연장을 짓는다는 계획은 전혀 없다. 공연장역이라는 이름의 역을 추진한 사실도 없다. 그 역명 자체가 근거 없이 붙여진 일방적인 이름일 뿐이다. 그 부지의 토지 용도가 바뀐 사실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최종 노선과 역 위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하고 경제성을 확보한 뒤, 국회 의결과 제3자 제안공고, 실시계획 승인까지 모두 거쳐야 정해진다. 지금 도는 도면은 그 어느 단계도 통과하지 않은 그림일 뿐이다.
“확정되지 않은 노선과 역사 위치가 표시된 도면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유포되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
이주현 국장은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는 파주 전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업에 대한 시민 의견은 주무관청인 국토부나 파주시로 직접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실은 2019년에 이미 끝난 이야기였다
여기서 브리핑은 한 걸음 더 들어갔다. 목동동 산53-21번지라는 지번이 아예 근거 없이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파주시는 2019년 대형복합 문화공연장 건립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했다. 금촌·운정 일대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목동동 산53-21번지도 그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군사시설보호법, 문화재보호법, 산지관리법 등 각종 규제와 과도한 토지매입비 문제가 겹치면서, 이 부지는 후보지 가운데 가장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12월, 목동동 부지는 명단에서 지워졌다.
그러니까 2021년 봄 아파트 단지를 떠돌던 소문은, 2년 전에 이미 결론이 난 후보지 하나가 국토부의 철도 발표와 뒤섞이며 되살아난 유령이었던 셈이다. 죽은 이야기가 새 뉴스의 옷을 입고 돌아온 것이다.
가짜 도면 유포 법적 대응한다.
파주시의 부인은 그대로 기사가 됐다. 파이낸셜뉴스, 파주민보, 경인일보, 중앙신문, 경기신문이 5월 27일부터 30일 사이 같은 브리핑 내용을 잇달아 전했다. 제목은 저마다 달랐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가짜 도면에 속지 말라.
파주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인천일보는 이후 파주시가 가짜 도면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한 장의 그림으로 시작된 소문이, 시청의 공식 대응과 언론의 반복 보도를 거치며 비로소 가라앉았다.
정작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자체는 이 회견 시점에도 여전히 미확정이었다. 계획은 그해 6월 최종 확정될 예정이었고, 그 전에 기획재정부의 민자 적격성 조사라는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노선이 어디로 지나갈지는 그 다음의 다음 문제였던 셈이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진짜 공연장 이야기가 시작됐다
목동동의 유령 공연장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몇 해 뒤, 파주에는 실제로 대형 공연장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자리가 다르다.
GTX-A 운정중앙역 특별계획구역 안 문화용지, 약 26,300제곱미터. 이름 붙은 사업은 운정중앙역 문화공연 콤플렉스. 뮤지컬 공연을 주목적으로 하는 2,000석 규모 대공연장과 300석 안팎의 가변형 소공연장, 전시·체험·교육 공간이 들어설 계획이다. 2,000석이면 기초자치단체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공연장 기준으로는 최대 규모다. 총사업비는 1,700억에서 2,000억 원 사이로 추산된다.
2026년 1월 12일, 시청에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중간보고회가 열렸다.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지방행정연구원 지방투자사업관리센터, LIMAC의 타당성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목동동의 이야기와 운정중앙역의 이야기는 이름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사업이다. 부지가 다르고, 시기가 다르고, 추진 주체와 절차가 다르다. 이와함께 문화체육관광부 2024.9월에 개관한 파주 무대공연종합아트센터도 무대용품과 의상을 보관하는 수장고 성격의 시설(2017~2023, 총사업비 352억 원)로 앞의 두 이야기와는 또 다른, 세 번째 사업이다.
남은 것
목동동 산53-21번지에는 결국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았다. 대형복합 공연장도, 공연장역도, 용도 변경도 없었다. 있었던 건 국토부의 철도 발표와 2019년에 이미 폐기된 후보지 하나가 우연히 겹쳐 만들어낸 도면 한 장, 그리고 그 도면을 믿고 퍼 나른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파주의 대형 공연장은 결국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논의되고 있다. 목동동의 소문이 남긴 건 텅 빈 부지와, 확정되지 않은 계획도에 얼마나 쉽게 마을 전체가 술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뿐이다.
참고: 파이낸셜뉴스 2021-05-30 / 파주민보 2021-05-27 / 경인일보 2021-05-27 / 중앙신문 2021-05-27 / 경기신문 2021-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