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과 공원 – 김태회
오늘은 춘분이다. 계절의 분기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햇살은 따뜻했다. 겨우내 굳어 있던 땅과 마음이 동시에 풀리는 듯한 날,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아파트 숲 사이로 반듯하게 뻗은 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훈풍은 그 흥을 더해주었다.
그런데 모임 장소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 낯선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주후곡공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조형물이 공원 입구에 서 있었다. 그곳은 분명 예전에는 작은 산이 있던 자리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는 탁 트여 있었고 이전의 울창함 대신 정돈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정돈됨’은 어딘가 낯설고 비어 있는 느낌을 주었다. 공원 상부 쪽으로 올라가 보니 몇 그루 남겨진 밤나무와 새로 심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고 운동기구와 벤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시민의 효율과 편의를 고려해 설계된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공원이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 있던 조그만 동산은 나름의 생태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도서관과 로데오 거리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그 산길을 통해 오갔다. 산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도심 속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고즈넉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교목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소위 잡목 잡풀이라는 이름 모를 나무와 풀이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그 식물들의 정확한 이름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풍경의 질감과 색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이 완전한 야생은 아니었을지라도 나름의 자연성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산책길이 되기도 했고 반려견과 함께 걷는 이들의 발걸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작고 평범한 동산이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존재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 그 자리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더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비되었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운동시설도 마련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개선’된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가 마냥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나는 문득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자연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공원은 자연일까, 아니면 자연을 흉내 낸 또 하나의 인공물일까. 기존의 산을 깎아내고 그 위에 인간의 기준에 맞춰 다시 배치한 나무와 시설들은 과연 ‘더 나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더욱 마음에 걸리는 것은 ‘쓸데’라는 기준이다. 기존의 식생들은 아마도 ‘쓸데없다’는 판단 아래 제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심은 나무들은 ‘쓸데 있는’ 존재일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열매 맺는 유실수라서일까, 경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늘을 잘 지어서일까. 어떤 기준을 가져다 대어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편의와 미적 기준이 ‘쓸모’라는 모호함으로 자연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모임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화제가 되었다. 친구 S는 공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쓸데없는 것들을 걷어내서 산뜻하고 벤치와 운동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시민들에게 유용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 공간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같은 공간을 보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자리가 원래 동산이었는데…’라고 말을 꺼냈지만 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는 ‘지금 심은 나무가 자라서 그늘이 지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 말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도 또 다른 방식의 ‘자연스러움’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주변 시민들이 좋으면 좋은 거지요’라고 말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다시 그 공원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 보았던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비로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라고. 같은 공간을 두고도 전혀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어느 쪽도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쩌면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보는 시각과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재구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시각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연스러움과 생태적 가치를 중시하고 후자는 인간의 삶의 질과 편리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두 관점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더 나은 것’을 선택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