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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馬山은 봉서산 남쪽으로 파주목 관아의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파주리 산 57-1번지에는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와 부마 박명원의 묘가 있다.
 
마산馬山은 봉서산 남쪽으로 파주목 관아의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파주리 산 57-1번지에는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와 부마 박명원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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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경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마산역이 파주목사 남쪽 1리에 있으며 옛 원평군 터였다고 기록됐다. 이와함께 마산말참은 북분 밖에 있다고 했디.
  
 
==설립 경위 및 역할==
 
==설립 경위 및 역할==

2025년 7월 5일 (토) 13:34 판

마산역은 고려시대부터 현재 파주읍 파주리에 소재하는 역참이다.

파주리 주변 항공지도

개요

마산역(馬山驛)은 고려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속역으로, 봉성현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편제에 의하면 경기우도정역찰방의 관할 하에 있었고, 성종대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영서도(迎曙道)의 속역으로 편입되었다.

위치

마산馬山은 봉서산 남쪽으로 파주목 관아의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마을 파주리 산 57-1번지에는 영조의 셋째 딸 화평옹주와 부마 박명원의 묘가 있다.

1760년 경에 발간된 여지도서에는 마산역이 파주목사 남쪽 1리에 있으며 옛 원평군 터였다고 기록됐다. 이와함께 마산말참은 북분 밖에 있다고 했디.

설립 경위 및 역할

『고려사(高麗史)』 「병지(兵志)」 참역(站驛) 조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청교도에 속한 15개 속역 가운데 하나로, 봉성현에 위치하였다. 정확한 설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의 역제가 22역도-525속역 체제로 정비된 995년(고려 성종 14)에서 1136년(고려 인종 14) 사이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1420년(세종 2)에는 정역(正役) 1명과 봉족(奉足) 2명을 1호(戶)로 편성한 전운노비(轉運奴婢) 10호가 배속되었다(『세종실록』 2년 8월 12일). 조선시대의 마산역은 벽제역(碧蹄驛)·동파역(東坡驛)과 함께 명나라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다른 역들에 비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신의 접대와 영송을 담당하는 인원은 6명에 지나지 않았다.

1425년(세종 7)에는 병조의 건의에 따라, 기존의 정원 8명에 6명을 더하여 총 14명이 사신들의 영송과 수발을 담당하도록 정원을 확충하였다(『세종실록』 7년 11월 3일).

한편 조선 세종대에는 강무(講武)와 제사 등의 행사를 치른 뒤 유숙하는 장소로 빈번히 사용되었다. 1420년에는 동파역에서 태종의 재우제(再虞祭)를 지내고 마산역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2년 1월 4일).

변천

조선 건국 후 전국적으로 역도와 역로 조직이 정비되면서 마산역은 1425년(세종 7) 경기충청정역찰방에 소속되었다(『세종실록』 7년 11월 3일). 이후 1431년(세종 13) 한양 서북 방면이 경기우도로, 동남 방면이 경기좌도충청도로 분리되면서 마산역은 경기우도정역찰방에 편제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1462년(세조 8)에 역도의 재정비가 이루어진 이후 경기우도찰방이 영서도 찰방으로 칭해지면서 성종 연간에 번포된 『경국대전』의 역도 체제하에서 영서도의 속역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문헌 기록

청교도 역참

청교도는 고려 시대에 개경과 지금의 서울인 남경을 잇는 간선 도로망으로 임진, 마산, 적성이 청교도 경로에 포함된 역참이다.역참에는 통파,마산 노선과 적성 노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문 번역 내용

"청교도(靑郊道)는 15개의 역을 관할하는데, 청교(靑郊)[개성(開城,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통파(通波)[임진(臨津, 경기도 파주시)], 마산(馬山)[봉성(峯城, 경기도 파주시)], 벽지(碧池)[고봉(高峯, 경기도 고양시)], 영서(迎曙)[남경(南京, 서울특별시)], 평리(平理)[덕수(德水, 황해북도 개풍군)], 상림(橡林)·단조(丹棗)[적성(積城, 경기도 파주시)], 청파(淸波)[남경], 노원(蘆原)[남경], 행주역(幸州驛)[행주(幸州, 경기도 고양시)], 종승(從繩)[수안(守安, 경기도 김포시)], 금륜(金輪)[수주(樹州, 경기도 부천시)], 중림(重林)[인주(仁州, 인천광역시)], 녹양(綠楊)[견주(見州, 경기도 양주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행주역이 종승역과 함께 수안현(守安縣)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행주에 위치한 것으로 수정하였다.[1]

조선 상택지

조선의 서유구(1764-1845)는 '상택지'에서 전국의 명당 중에 파주리의 마산역촌, 화석정, 우계, 내소정,용산,정자포를 소개했다.

상택은 환경의 쾌적한 온도 조건, 깨끗한 물의 풍부한 공급 등 살기 좋은 기본 조건을 갖춘 명당을 고르는 것은 말한다.


마산역에서 자고

조선초기 성리학자이며 문장가인 권근이 쓴 양촌집에 있는 글이다. 마산역은 현 파주읍 파주리에 소재하는 조선시대 역참이다.

원문

宿馬山驛 숙마산역

樺近/권근

佳菊誰栽古館傍 가국수재고관방
黃朱錯落滿東墻 황주착락만동장
涓涓新沐三更雨 연연신목삼경우
粲粲能經十月霜 찬찬능경십월상

在驛尙堪稱隱逸 재역상감칭은일
泛樽難爲作重陽 범준난위작중양
最憐衆卉皆搖落 최련중훼개요락
獨保淸寒晩節香 독보청한만절향

번역
객사 옆에 좋은 국화 누가 심었나
노란 빛 붉은 빛 담에 가득하구나
삼경 비에 곱디 곱게 새 목욕했고
시월 서리에도 찬란하게 능히 견디네
역에서도 은일이라 이를 만하고
술잔에 띄우나 중양절은 지나갔네
온갖 꽃이 흔들려 떨어졌는데
외로이 지키는 절조 가장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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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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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려사』 권82 병지2 참역(站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