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의료폐기물 소각장의 오늘까지 기록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67번지. 임진강 수계에 가까운 낮은 산자락 아래, 8월 볕이 내리쬐는 진입로 위에서 마을 사람들이 두 팔을 들어 가슴 앞에 커다란 ‘X’자를 그렸다. 하루 48톤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이 들어설 예정지다. 파주시가 “사업계획은 부적합하다”는 공식 답변을 내놓은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지만, 마을은 여전히 팔을 풀지 않았다.
이 싸움의 한가운데에는 마지2리 유희자 이장이 있다.

단체대화방으로 알게 된 사업
일의 시작은 조용했다. 2026년 6월 말, ㈜한국메디환경이라는 업체가 한강유역환경청에 사업계획서를 냈다. 하루 2톤씩 24시간, 연간 1만 5,840톤에 달하는 격리·위해·일반 의료폐기물—적출 장기와 절단된 신체 일부, 혈액오염폐기물까지 포함되는—을 소각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부지는 자연녹지지역 약 9,490㎡, 마지2리 마을회관에서 가까운 산림이었다.
파주시 자원순환과가 관련 부서에 의견 제출을 요청한 것이 7월 9일 무렵. 그러나 정작 사업 예정지 주민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마을이 사업 추진 사실을 처음 안 것은 7월 20일, 그것도 이장단 단체대화방을 통해서였다. 사흘 뒤인 7월 23일 적성면은 각 마을 이장에게 “주민 의견을 수렴해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검토 기간은 단 3일. 주민들 사이에서 “이게 무슨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유희자 이장은 그 사흘 동안 마을을 돌며 의견을 모았다. 결과는 명확했다. 마지2리 마을회 전체 주민 중 찬성은 단 3명. 나머지는 반대였다. 7월 22일 자로 제출한 의견서 기준으로는 95% 이상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사업 예정지 반경 300m 안에 거주 가구 3세대, 요양원, 축산농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부지로 들어가는 현황도로가 다름 아닌 마을회 소유 땅이라는 것—이것이 마지2리가 내세운 반대의 근거였다.

갈라진 마지1리와 마지2리
그런데 바로 옆 마지1리는 정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장을 비롯한 마지1리 마을회는 별도 의견제출서를 통해 사업 유치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1리와 구읍2리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군부대 의존도로 지역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기업 유치가 시급하다는 논리였다. 용인시의 현대식 친환경 소각시설 사례를 벤치마킹해 확인했다며, 해당 업체가 이웃 마을인 마지2리에 들어와 지역 경제 회복의 계기가 되길 환영한다고까지 했다.
같은 사업을 두고 담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정반대로 갈린 셈이다. 그리고 그 균열 위로 또 하나의 석연찮은 정황이 겹쳤다. 사업계획서상 예정지는 분명 마지2리였는데, 이장단 단체대화방에서는 이모 마지1리 이장이 “마지1리에 설치되는 시설”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유희자 이장이 정정했지만 이미 퍼진 오해는 쉽게 바로잡히지 않았다. 사업 예정지도 아닌 마지1리 이장이 왜 정보 전달 과정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같은 시기 적성산업단지 경영인 일동도 목소리를 보탰다. 7월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산업단지로부터 불과 2km 떨어진 곳에 매시 2톤 규모의 의료폐기물 소각 설비라니, 명백한 혐오시설”이라며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배출 위험과 근로자·주민 건강권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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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이 다녀간 마을
8월 3일, 경기도의회 김순현 의원이 마지2리를 찾았다. 다음 날인 4일에는 파주시의회 지은영·손형배 의원이 나란히 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의 우려를 들었다. 유희자 이장이 그날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주민들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파주에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확실히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유희자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야 의원들이 직접 마을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적극적으로 함께 싸우겠다는 뜻을 밝혀준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완전히 백지화가 확정되는 그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번지는 반대 — 마을과 시민사회의 결집
의원들이 다녀간 지 며칠 뒤인 8월 6일, 적성면 곳곳의 마을 입구와 도로변, 주민 집 담벼락에는 “주민동의없는 의료폐기물 소각장 결사반대”, “적성면 청정지역을 지키자” 같은 문구를 담은 붉은 현수막이 잇따라 내걸렸다. 사업 예정지인 마지2리 한 마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현수막을 내건 주체는 다음과 같다.
- 적성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 마지2리 주민일동
- 주월리 마을회
- 가월리 마을회
- 객현1·2리 주민일동
- 식현1리 마을회
- 식현2리 마을회
- 답곡리 마을회
- 자장리 마을회
- 공릉천 친구들
- 파주시민네트워크
사업 예정지 마을(마지2리)을 포함해 적성면 법정리 대부분—주월리, 가월리, 객현1·2리, 식현1리·2리, 답곡리, 자장리—이 마을 단위로 반대 대열에 이름을 올렸고, 여기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환경단체 공릉천 친구들까지 가세했다. 사실상 찬성으로 돌아선 이웃 마지1리 한 곳을 제외한 적성면 전역이 반대로 결집한 셈이다.
파주시민네트워크는 7월 31일 이미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성명서는 네 가지를 요구했다. 이장단 단체대화방을 통한 뒤늦은 고지와 마지1리·마지2리 간 정보 혼선 등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을 지적하며 투명한 소통 절차의 제도화를 촉구했고, 한강유역환경청에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할 것을 요구했다. 적성면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근거로 혐오시설 대신 생태·관광·문화 벨트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했으며, 의료폐기물 소각 시 배출되는 1급 발암물질 다이옥신·퓨란의 위험성을 WHO 가이드라인 등을 근거로 짚으며 건강권 보호를 요구했다.
성명서는 반대 여론을 “적성면 주민들의 100%에 가까운 반대”라고 표현했다. 마지1리를 빼면 그 표현이 과장만은 아니었다.



“부적합”이라는 두 글자

일주일 뒤, 파주시로부터 답이 왔다. 파주시민네트워크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민원(신청번호 1AA-2608-0037839)에 대해 파주시 자원순환과가 2026년 8월 11일 저녁 6시, 공식 답변을 회신한 것이다.
“인근 주민들과 학교, 요양원, 산업단지 종사자 등의 제출된 의견과 주민 정서나 지리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바, 사업계획은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마을이 기다리던 문장이었다. 그러나 답변은 곧바로 단서를 달았다. 사업의 인허가권자는 파주시가 아니라 한강유역환경청이며, 법적 위반사항이 없는 한 파주시가 실질적인 행정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는 것. 다만 향후 정식 인허가가 접수되면 ‘갈등유발 예상시설 사전고지 조례’에 따라 사전고지하겠다는 약속만 덧붙었다.
“부적합”이라는 두 글자는 반가웠지만,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마을 밖에 있었다.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8월 18일, 유희자 이장은 다시 보도자료를 냈다. “파주시의 ‘사업계획 부적합’ 공식 답변에도 안심 못 한다”는 제목이었다. 파주시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한강유역환경청의 최종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는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이 이장과 주민들의 판단이었다.
유희자 이장은 다시 주민들과 함께 소각장 설립 예정 부지와 진입로 토지를 찾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두 팔로 커다란 ‘X’자를 그렸다. 보도자료는 이번에는 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시설 예정지에서 참다원요양원까지 약 136m, 마을회관까지 약 609m, 적서초등학교까지 약 787m, 적성융합고등학교까지 약 523m. 앞서 알려진 지도상 거리(요양원·마을회관 각 약 300m)와는 다른 수치였지만, 어느 쪽이든 마을과 소각장 사이의 거리가 위태롭게 가깝다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생존권과 건강권을 위협하는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완전히 백지화되는 그날까지,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7월 20일 단체대화방의 메시지 한 통으로 시작된 싸움은, 8월 18일 현재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강유역환경청의 최종 처분이 나오기 전까지, 마지2리와 적성면의 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이 기록은 파주시민네트워크 성명서, 파주시대·atpaju.com 보도, 유희자 마지2리 이장이 배포한 보도자료(2026-08-04, 2026-08-18), 국민신문고 파주시 공식 답변(2026-08-11), 현수막 사진(2026-08-06)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파주콘텐츠제작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