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시인, 원희석 – 강근숙

원희석 시인이 타계한 지도 어언 28년이 되었다. 파주의 천재 시인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도 안타깝거니와 문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더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파주 문인협회에서는 지난해부터 생전에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친 원희석 시인을 조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세상 떠난 지가 오래되어 그의 제자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올해는 꼭 해야 한다며 원고 뭉치가 내게로 넘어왔다. 원 시인과 나는 같은 마을에 살지는 않았으나 성인이 되어 문화 모임에 나가면서 자주 만났고, 그의 동네 형들이 내 동창이라 스스럼없이 어울려 술도 한 잔씩 기울였다.
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중·고를 다닌 원희석 시인은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인문계가 아닌 파주공고를 나와 한국일보사 편집부에 입사하여 신문기자 신분으로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 『문학사상』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그해 곧바로 첫 시집 『물이 옷 벗는 소리』를 문학사상사에서 펴냈다. 두 번째 시집 『바늘구멍 앞에 낙타』를 발간하여 199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관한 ‘대한민국문학상’ 시 부문에서 신인상을 받았으며, 영역시집 『Water. fire & Earth』를 간행했다.

원희석은 문학뿐 아니라 지역 언론 활동을 병행했다. 한국일보사를 그만두고 파주로 내려와 많은 일을 펼쳤다. 1991년 <파주저널>을 창간하여 발행인이 되었고, 1992년 한국문인협회 파주지부 발기인으로 부지부장이 되었다. 다음 해 문인협회 경기도지부 부지부장이 되어, 파주시 문화센터에 문예창작반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 강의를 하여 1996년 「사람과 시인」 동인 모음집 『담장에 핀 꽃들』을 발간했다. 강의를 받은 동인들은 지금도 문학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시가 수준급이다. 1997년 한국예술인 단체 파주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선임되었고, 파주문화상 문화예술 부문에서 수상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던 중 1998년 8월 19일 갑자기 쓰러졌다. 그는 고향을 너무 사랑했다. ‘정직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파주를 위해 큰일을 해보겠다’고 애쓰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비통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세상을 등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42세였다.
한때는 이런저런 일로 원희석 시인과 자주 만났다. 어느 날 주당 몇 명이 술을 마시다 공동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비석도 없는 납작한 묘 앞에 앉은 원 시인은 술 한 잔을 따르고 “이름 모를 영혼이시여, 이 술 한 잔 받으소서” 하며 축문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한 헌시를 길게 읊조렸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 구성진 입담을 안주 삼아 우리는 동동주를 몇 동이나 마셨는지 모른다. 세월 흘러도 젊음과 낭만이 넘치던 그 밤은 잊히지 않는다. 월롱산月籠山 아래 ‘월월붕붕月月朋朋’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문학을 논하고 세상을 얘기하던 자유로운 영혼, 술잔을 앞에 놓고 “월롱산에 달이 뜨면 달이 여덟이라”고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못내 그립다.
원희석에 대해 글을 쓰려면 그의 시 세계를 알아야 하는데, 시에 문외한인 내가 언감생심 대시인의 시를 말할 수 있겠는가. 곁에 있을 때 시 공부를 왜 못했을까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내게는 첫 시집 『물이 옷 벗는 소리』와 유고 시집 『첫사랑에 실패해본 사람은 더욱 잘 안다』 두 권밖에 없기에 원 시인의 제자 신동근 작가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바늘구멍 앞의 낙타』와 제자들이 펴낸 동인지 「담장에 핀 꽃들」, 영역시집 『Water. fire & Earth』 등 대여섯 권을 안고 왔다. 어느 해 본인이 소장한 책이 홍수로 다 떠내려가 주위에 사는 동인의 책을 빌려 복사했다는 신 작가는 스승의 글을 보물인 양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고마웠다. 일부러 찾아와 전해준 자료를 매만지며 파주의 시인 원희석의 고뇌와 영혼의 향기를 느껴본다.

첫 시집 『물이 옷 벗는 소리』를 다시 읽으며 그가 유난히 따뜻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에 봉투가 들어간 ‘어머니의 봉투’ ‘다시 봉투’ ‘이런 봉투’ ‘가장 큰 봉투’이다.
어둠의 끝 잘라 접고 계셨다 붙여도 떨어지는 풀기 없는 내일을 이미 맥없이 풀어진 파란 하늘을 마른 손, 마른 힘으로 접고 계셨다.
한번 구겨지면 펴지지 않는 빈곤의 뜨락, 누런 시멘트 종이 접어 쌀을 만들고 뜻 모를 구호가 적힌 신문질 잘라 가난을 터시며 뚝뚝 허기를 뜯어 넣고 끓인 멀건 수제비 한 그릇, 낮은 판자 지붕 밑으로 기어드는 빗물의 아우성, 철없는 우리들 때 절은 투정까지 모두 눈물을 발라 접고 계셨다 길고 긴 한숨 봉투를 접고 계셨다 까만 세월의 봉투를 접고 계셨다
지금은 다 접고 편히 쉬실까 하늘의 끝에서, 지금은 무엇을 접고 계실까 잠 못 드시며 외로이 떠 있는 여윈 별 하나 오늘도 말을 걸듯 곱게 빛난다 깜빡깜빡 물기 없이 눈물 흘린다
-「어머니의 봉투」 전문
가난하게 살아본 사람은 ‘봉투’가 쉽게 읽힌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60년대 어머니가 부업으로 봉투를 붙이고, 멀건 수제비로 허기를 채웠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시인은 돈 몇 푼 벌려고 봉투를 붙이던 어머니 모습을 떨치지 못한다. 가난한 날의 일기 같은 ‘어머니의 봉투’ 한 구절 한 구절에는 인고의 삶을 살아낸 우리들의 어머니, 내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 뭉클하다.
(….)우리가 지금 가장 소중하게 챙겨 넣을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응어리진 門 활짝 열어줄 물빛 사랑, 영혼의 따듯한 햇살 한 줌, 깊은 어둠 속 가라앉은 초록의 진실, 넣어두는 일이다 영원히 남는 것 썩지 않는 것 오래 남는 것을 담아두는 일이다
-「다시 봉투」 후반부
설명이 필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썩지 않고, 변치 않고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 물빛 사랑, 햇살 한 줌, 초록의 진실이라 말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생의 가치는 영원히 남는 것, 썩지 않고 변치 않는 햇살 한 줌 같은 시가 아니었을까.
만나기가 어렵다 십여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하나 너무 얼굴이 번지르해서 뚜껑만 멋이 있고 백일장 하며 만난 선배 한 분 종이 질이 너무 얇아 사타구니까지 훤히 비쳤다 일부러 인사동 술집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막걸리 한잔 나눠 마시러 실비집 골목 어귀에 앉아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어쩌랴 갈수록 좁은 봉투 작은 봉투 다 썩은 봉투만 보인다 제법 실해 보이던 닥나무 봉투 하나 몇 번 소주에 젖더니 맥없이 풀어지고 명문대학 도장 찍힌 건방진 봉투 하나 몇 번 밤이슬 같이 맞더니 양말에 난 구멍까지 다 보인다. 어디에 있을까 넓고 깊은 봉투 하나 꾹꾹 눌러 담아도 찢어지지 않는 봉투 하나 온 세상 빗물 다 담아도 젖지 않는 깊고 질긴 봉투 하나
-「이런 봉투」 전문
(….)외상술값 떼어주고 월부 책값 제하고 얻어 쓴 돈 이자 내고 탈탈 털다 보면 겨우 코딱지만 하게 작아진 봉투 힘없는 봉투 슬픈 월급봉투 하지만 제가 밤마다 접고 있는 비밀의 봉투는 세상에서 가장 클 겁니다 어떤 것은 하늘보다 큰 것도 대통령보다 더 높은 것도 있습니다 어젯밤에 너무 열심히 접다 보니 온 방안에 화사한 나비가 쌍쌍이 날아들고 와르르 와르르 말씀의 요정들이 무지개빛 그네를 타고 신나게 별빛 속으로 춤추며 안기어 들었습니다 깨어있는 자가 만드는 창조의 봉투, 언어의 봉투, 너무 깊어 보이지 않는 영혼의 봉투, 그걸 만드는 저는 가난한 알부자, 배가 고파도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밤을 새워 접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가장 큰 봉투」 후반
네 편의 ‘봉투’만 읽어보아도 시인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이런 봉투」에서 ‘명문대학 도장 찍힌 건방진 봉투 하나 몇 번 밤이슬같이 맞더니 양말에 난 구멍까지 다 보인다’ 하였다. 명문대학을 나와 거들먹대는 초등학교 친구가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시인은 꾹꾹 눌러 담아도 찢어지지 않는 진실의 봉투, 온 세상 빗물 다 담아도 젖지 않는 깊고 질긴 봉투가 어디 있나 애타게 찾는다.
「가장 큰 봉투」에서 희망에 찬 풍경을 그린다. 비록 코딱지만 하게 작아진 봉투 힘없는 월급봉투를 가진 시인이지만, 그가 밤마다 접고 있는 비밀의 봉투는 하늘보다 크고 대통령보다 더 높았다. 온 방안에 나비들이 날고 요정들이 무지개빛 그네를 타고 춤을 추었다. 한 편의 시를 찾아 불면의 밤을 보내는 시인은 ‘깨어 있는 자가 만드는 창조의 봉투, 언어의 봉투, 너무 깊어 보이지 않는 영혼의 봉투를 만드는 자신을 가난한 알부자라’고 자부한다. 배가 고파도, 밤을 새워 봉투를 접어도 힘들지 않고, 삶이 고단해도 시적 열기로 가득 찬 시인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나는 송곳이 되고 바늘이 되고 가난한 이웃의 숟가락이 되고 義로운 이들의 횃불이 되어 드디어는 자갈밭 갈아엎는 삽자루가 되지 절대로 절대로 멍청이 서 있다 부러지는 쥐똥나무 이쑤시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쥐똥나무」 일부
두 번째 시집 『바늘구멍 앞의 낙타』에 실린 ‘쥐똥나무’ 후반부를 보면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롭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기름진 땅에서 자라나는 쥐똥나무는 되지 않겠다 한다. ‘나는 송곳이 되고 바늘이 되고 가난한 이웃의 숟가락이 되고 義로운 이들의 횃불이 되어 드디어는 자갈밭 갈아엎는 삽자루가 되지 절대로 절대로 멍청히 서 부러지는 쥐똥나무 이쑤시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짐한다.
(….) 우리 집 부엌을 비웃는 밥통 삼성전자 밥통을 째려보는 밥통 대우전자 밥통을 죽이려는 밥통 밥통 같은 여자들이 너무 좋아해 큰일 난 밥통 조선 처녀 도라지꽃으로 끌고 간 밥통 내가 아는 여자를 술집에 팔아넘긴 밥통 (….)도끼로 꽝꽝 때려 부수고 싶은 밥통 피가 나도록 때려 부수다 더 못 참아 쇠톱으로 토막토막 토막살인해서 시궁창에 던져버리고 싶은 밥통 지옥 유황불에 던져버리고 싶은 밥통 죽이고 죽이다 내가 먼저 죽어도 다시 태어나 통째로 녹여 대장간 모루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밥통 똥 묻은 해머로 꽝꽝 찌부러뜨려 꽁치통조림 깡통처럼 만들어 버리고 싶은, 코끼리처럼 크지 않은 망할 놈에 코끼리 밥통
-「코끼리 밥통」 중반부
일제 코끼리 밥통은 1980년대 국산보다 앞선 기술로 주부들이 갖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시인이 코끼리 밥통을 깨부수고 싶어 하는 까닭은 일제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행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조선을 침략해 선량한 백성을 학살하고, 꽃다운 처녀 20여만 명을 일본으로 끌고 가 마구 짓밟았다. 조선인의 씨를 말리려 13만 명의 코와 귀를 잘라 만든 ‘코무덤’이 교토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천 년이 지나도 잊어선 안 되는 천인공노할 짓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시인은 ‘조선 처녀 도라지꽃 끌고 간 밥통’ ‘밥통 같은 여자들이 너무 좋아해 큰일 난 밥통’이라며 가슴을 친다. 그 밥통을, 아니 그 원수 같은 밥통을 도끼로 때려 부수고 톱으로 토막 살인을 해서 시궁창에 버리고 유황불에 던져버리고 싶은 밥통, 죽이고 죽이다 내가 먼저 죽어도 다시 태어나 통째로 녹여버리고, 똥 묻은 해머로 꽝꽝 찌그러뜨려 꽁치 통조림 깡통처럼 만들어 버리고 싶은 망할 놈의 코끼리 밥통이라 울분을 토한다.
꺼지면 큰일 나는 삼천리 연탄 막아 버리면 죽어버리는 삼천리 연탄 막아 버리면 끝장나는 삼천리 연탄 떨어지면 깨져버리는 삼천리 연탄 떨어지먼 두 개 되는 삼천리 연탄 맞붙어야 활활 타는 삼천리 연탄 (….)
가슴마다 붉은 횃불 가지고 있어야 굵은 사슬 끊어버리는 삼천리 연탄 밟힌 어깨 밀쳐버리는 삼천리 연탄 철조망까지 녹여버리는 삼천리 연탄 손에 손 마주 잡고 얼싸안고서 어화둥둥 춤추게 될 삼천리 연탄 헤어진 피 갈라선 피 만나게 되어 온 방안 쩔쩔 끓을 삼천리 연탄 천년만년 꺼지지 않을 삼천리 연탄 지화자 좋을시고 삼천리 연탄 남남북녀 하나가 될 삼천리 연탄
-「삼천리 연탄」 중·후반부
삼천리 연탄은 남북 분단의 아픔과 연관된다. 떨어지면 깨지고 맞붙어야 활활 타오르는 연탄은 단순히 불을 지피는 도구가 아니라 통일의 불길이다. 한국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원인 연탄이 불꽃처럼 끊임없이 타올라야 생명력이 살아난다. ‘남과 북이 떨어져 있을 때 힘을 잃고, 화합해야 활활 타오른다’고 통합의 열망을 강조한다. ‘금수강산 맞붙어 있어도 갈 수 없어 38구멍 뚫린 삼천리 연탄’을 통해 민족의 분단을 묘사했다.
너는 똥이다 참외씨다 썩지 않은 염주다 썩은 낙타 눈깔 같은 도둑놈들은 들어라 너는 개밥그릇이다 깨진 소금 항아리다 텅 빈 영화관이다 썩을 놈의 구더기 밀가루 포대다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나는 시멘트 포장지다 보지 못하는 돈구멍이다 안경 낀 시궁창이다 넙죽넙죽 받아먹는 세퍼드다 좌우로만 왔다갔다 하는 시계불알이다 뒤집어쓴 화해탈이다
– 「들어라 정치인들아」 전반부
「들어라 정치인들아」 전반부는 정치인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강렬하다. 전반부에는 쓸모없고 혐오스러운 사물에 빗대어 정치인의 부패와 무능을 드러내고, 후반부에는 ‘잔치집 젓가락처럼 짝 안 맞기는 마찬가지다 미친년 볼기짝처럼 마구 벌려도 좋다’며 노골적으로 위선을 드러낸다. 시인은 어느 시대나 불만이 많은 법이다. 예리하고 올곧은 성정을 가진 그가 정치인들을 보며 할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가 산문시를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운문시로는 가슴에 복받치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요즘 정치인들을 본다면 그 특유의 풍자로 독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을 텐데, 눈부신 재능을 갖춘 원희석은 야속하게도 천재들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어갔다.
(….) 사랑하는 사람도 꼬깃꼬깃 감춰두었던 엉터리 원고 뭉치도 가끔씩 혼자 꺼내보던 색 바랜 비밀도 모두 남김없이 두고 갈 것이다 하얀 뼈와 살 모두 지상의 한 귀퉁이에 보태주고 퇴거신고도 필요 없는 곳으로 뒤를 자꾸 돌아보며 혼자서 터벅터벅 걸어서 갈 것이다 빈손과 맨발로 눈물 흘리며 갈 것이다 편지도 오지 않고 답장도 낼 수 없는 곳으로 아쉬워하며 흔들흔들 혼자서 갈 것이다
-「이사」 후반부
원희석 시인의 유고 시집에는 200여 편이 넘는 시가 실렸다. 시 속에 녹아있는 시인의 사유와 내면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가 일찍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면 파주의 문화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했을 것이고, 시집도 여러 권 냈을 것이라 확신한다. 감성이 촉촉한 서정시를 마다하고 서민들의 고통과 민족의 아픔인 통일 문제를 추구하던 외롭고 가난한 시인, 얄궂은 운명은 그를 일찍 데려갔으나 그의 시는 영원한 별자리가 되어 푸르게 빛날 것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던 그가 문득 그립다. 떠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시 「이사」를 읽어보면 술이 거나하게 취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뒤를 자꾸 돌아보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편지도 오지 않고 답장도 낼 수 없는 곳으로.







원희석 멋진 친구였습니다.
서울에 살던 나는 파주 친구 서정완을 통해
고인인 원희석을 만나 친구로 지인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파주에 오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넓은 가슴 그리고 깊은 고뇌, 사람을 너무 좋아했던 따뜻함 작은 거인 원희석 많이 그립네요. 젊은 시절 암울했던 그시절 그와 나누었던 수 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쓴 소주를 마시며 흔들리는 별을 바라보며 서로 호명을 지어주던 그 시절….
이제는 고독한 늙은 이가되어 돌아보면 좋은 추억을 한 아름 심어 놓고 떠난 친구 원희석이 많이 그립습니다.
잊고 있던 멋진 친구를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