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다정함 – 신수현

그녀가 근무하는 사무실로 인사발령을 받은 건 15년 전 초여름이었다.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대낮에 찾아온 이른 더위에 책상 위에 놓인 미니 선풍기를 틀었다. 내가 가기로 했던 부서는 그곳이 아니었다. 분명 발령 전날 상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다른 곳이었다. 발령이 나던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변수가 생겨 가지 못한다는 말을 상사에게 전해 들었다. 실망감은 없었다. 숫자와 친하지 않은 나는 되레 잘되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곳에서의 일들은 뻔했다. 난 왜 그곳이 선호 부서인지 이해할 수 없었고, 상사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요직에 나를 앉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흘리며, 자신의 영향력이 조직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증명해 보이려는 듯했다.
살아가다 보면 인연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어긋나곤 한다. 내가 예정되었던 곳으로 갔다면 난 이 큰 행운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새 부서는 설렘보다 두려움이었다. 2년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인사이동은 늘 감당하기 벅찬 스트레스였다. 부서가 바뀌면 단순히 자리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숙련도가 무색하게 업무도 사람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지 않은 일을 맞닥뜨릴 때면 나는 늘 내가 바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며 시간이 흘러 손에 익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환경 변화에 유독 더디게 반응하는 내게 낯선 공기는 늘 날 선 긴장감을 몰고 왔다. 그 막막한 두려움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희석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조금 새침해 보였다. 나보다 열 살쯤 아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를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져 나는 내심 긴장한 채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얼굴 가득 활짝 웃어 보였다. 그 미소는 마치 통통 튀는 햇살 같았다. 꽝꽝 얼어붙은 얼음조차 단숨에 녹여버릴 듯한 그 다정한 온기에, 잔뜩 세워두었던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찰나의 안도감과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녀와는 복도에서 한두 번 스친 적이 있는 정도였다. 모르는 사이라 아는 척은 안 했지만,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지인의 평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난 사무실을 돌며 스무 명 남짓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낯익은 얼굴은 반가움으로, 처음 보는 얼굴은 어색함으로 마주하며 정신없는 첫날을 보냈다.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보기와 달리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강단 있는 사람이었다. 훗날 나를 은근히 괴롭히던 이에게 그녀가 안겨준 소소하지만 통쾌한 복수극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겐 없는 것을 가졌던 그녀였기에 매력적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가장 정직한 열쇠였다. 낯선 업무도 한 달 정도 매달리니 비로소 흐름이 보이고 손에 익기 시작했다. 안갯속을 걷는 듯했던 긴장감과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자, 비로소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과 전체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술기운이 올라 볼이 발그레해진 그녀가 내게 넌지시 다가와 물었다.“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그 한마디가 어찌나 반갑고 다정하게 들리던지. 그녀는 내가 오고 나서부터 사무실에 출근하는 게 즐거워졌다는, 말도 안 되는 칭찬을 꽃다발처럼 안겨주었다. 평생 스스로를 무채색의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기쁨보다 민망함과 어색함이 앞서 몸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 낯설고도 달콤한 고백에,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저 수줍게 웃을 뿐이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참으로 따스했던 그 밤의 공기가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밤, 그녀는 내게 ‘해님’이라는 근사한 별명을 선물했다. 내게선 늘 햇살 같은 밝은 아우라가 느껴진다며, 나의 미소를 보면 마음까지 환해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그리 밝은 사람이라 생각지 않았기에 그 말이 생경하면서도 무척 반가웠다. 내가 모르던 나의 빛나는 조각을 그녀가 찾아내 건네준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다 ‘별님’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 별님이라니, 너무 좋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엔 행복이 차올랐다.

옆에서 지켜보던 직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이 사귀기라도 하느냐’며 찬물을 끼얹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웃으며 ‘난 남자를 좋아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 대답했고, 별님 또한 방긋 웃으며 ‘사고방식이 왜 그렇게 부정적이냐’고 그 직원을 장난스레 구박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말로 조금 더 환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누군가 나를 해님이라 불러준 덕분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전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타인의 다정한 시선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선순환시키는지, 나는 그녀를 통해 비로소 배우고 있었다.
세상에는 남자들의 우정만큼이나 단단한 여자들의 우정이 있고, 때로는 성별을 뛰어넘는 우정도 존재한다. 적어도 내게 우정이란 나이의 장벽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가 무색하게, 얼떨결에 찾아온 까마득한 후배와의 우정은 내 삶에 도착한 뜻밖의 선물 같았다. 그 회식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가끔은 점심을 함께 나누고, 나른한 오후면 탕비실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앞에 둔 채 짧고 달콤한 수다를 떨었다. 각자의 업무에서 마주하는 곤란함과 스트레스를 털어놓을 때면, 서로를 다독이는 위로의 말들이 믹스커피의 설탕처럼 마음의 쓴맛을 녹여주곤 했다.
때로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먹으며 일상의 시름을 잊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참으로 빛나고 꿈같은 시간이었다. 15년 전의 아득한 기억이지만 신기하게도 그 풍경은 여전히 흐려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마음의 색깔이 그만큼 선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별님은 내가 무심코 내뱉은 갈라진 목소리나 시린 발끝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위염이 재발했을 땐 ‘언니는 소중하니 아프지 마라’는 메모와 함께 양배추즙을 건넸고, 사무실 냉기에 발이 시리다는 말 한마디엔 포근한 털 실내화를 내밀어 나의 겨울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감기 기운이 돌 때면 어느새 편의점으로 달려가 따뜻한 생강차를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곤 하던 그녀. 누군가의 사소한 불편함을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보듬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나의 거친 손을 어루만져 주던 그녀의 마음이다. ‘투박한 손’이라는 동료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던 나를 살피던 그녀가 며칠 후 나를 탕비실로 이끌었다. 그녀가 내민 것은 생경한 모양의 ‘손 영양 장갑’이었다.“언니, 진정 아름다운 손은 바로 언니 손이에요. 절대 창피해하지 마세요. 전 언니의 손까지 사랑할 거예요.”장갑에 담긴 그 메모를 읽는 순간 시야가 흐릿해졌다. 나보다 먼저 눈시울이 붉어진 별님을 보며, 우리는 좁은 탕비실에서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 나를 이토록 깊이 관찰하고 아껴준다는 것, 돌이켜보면 나는 그 시절 그녀의 사랑으로 과분한 호강을 누리고 있었다.
2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나는 다시 정든 부서를 떠나야 했다. 몸은 멀어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쉬이 식지 않았다. 퇴근 후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과 종종 모여 저녁을 먹곤 했는데, 알고 보니 그중 한 명과 별님이 남몰래 예쁜 사랑을 키워오고 있었다. 내가 아끼던 또 다른 후배와 별님의 만남이라니,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흡족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함께 홍대로 연극을 보러 갔던 어느 주말, 생각지도 못한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졌다. 공연이 끝날 무렵 무대 위로 올라간 별님이 연인에게 정성껏 쓴 편지를 읽으며 깜짝 프로포즈를 한 것이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두 사람 사랑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그녀의 마지막 인사가 귓가에 닿는 순간, 내 눈에서도 축복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듬해 꽃피는 3월,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씩씩한 두 아들의 엄마가 된 그녀는 여전히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다. 직장 생활부터 살림, 육아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척척 해내는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에도 그 시절의 따스한 햇살이 다시금 차오르는 듯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세월은 흘러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의 무늬를 그려가고 있지만, 마음의 주파수는 언제나 서로를 향해 있음을 안다. 나를 조건 없이 응원해 주던 별님.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던 나를, 마치 세상의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편이 되어준다는 것, 그 지극한 다정함으로 고단한 한 시절을 기꺼이 견디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나는 그녀를 통해 배웠다.
쉰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의 어떤 순간도 영원히 붙잡아둘 수 없다는 것을, 삶은 쉬지 않고 흐르는 강과 같음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기에 지금 이순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전해야 하는 이유다. 그녀와 함께 본 연극처럼 내 삶이 ‘우연히, 행복해졌던’ 그 찰나의 기억들을 가슴 속에 소중히 담아둔다. 별님은 지금도 누군가의 밤을 비추는 다정한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일깨워준 내 안의 빛을 잃지 않고, 누군가의 시린 마음에 온기를 보태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도 결코 빛바래지 않을 그 따스했던 초여름의 공기를 기억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