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대학유치의 흑역사
2026년 5월 28일 파주시가 ‘대학 유치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하며 “대학 유치는 미래 성장 동력이자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라 밝혔다.
인구 53만을 넘은 경기 북부 최대 도시 파주에는 웅지대학·두원공과대학교·서영대학교, 세 개의 전문대학이 있다. 지역 산업과 연계된 실무 인재를 길러내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4년제 대학은 아직 없다. 파주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4년제 진학을 위해 타 도시로 떠나야 한다. 이제 새 정부의 지방분권 흐름 속에서 그 오랜 과제를 풀 때가 됐다. 파주의 젊은이들이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고 지역에 취업하는 도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파주시장이 대학 유치에 목매는 이유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수천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상주하고, 식당·카페·서점·원룸이 주변에 모여든다. 지역 상권이 살아나고, 청년 인구가 유입되며, 지자체 세수도 늘어난다.
파주는 오랫동안 ‘규제의 도시’였다. 대학 하나가 없다는 것은 그 박탈감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가 파주를 떠나고, 타지에서 취직하고 정착하는 동안 파주는 침대도시(Bedroom City)로 머물렀다.
파주 대학유치의 구조적 걸림돌
수도권정비계획법은 대학을 ‘인구집중 유발시설’로 분류해 수도권 내 신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서울·경기 지역에 이미 인구가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이유다. 여기에 군사시설보호법이 더해졌다. 파주는 전방 군부대가 곳곳에 포진해 있어, 학교 부지를 잡으려면 관할 군부대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나마 전문대학(2년제)은 수도권정비계획법 적용에서 비교적 유연했다. 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파주 최초의 대학이 탄생한다.
파주 대학들의 개교 과정과 현재
파주에 현존하는 대학들은 모두 제각각의 사연을 안고 들어왔다.
웅지세무대학(현 웅지대학)은 탄현면 금승리에 들어선 파주 최초의 대학이다. 군부대 동의와 시장의 열성으로 탄생했으나, 개교 직후 비리 스캔들에 휩싸이며 시장을 죽음으로 몰았다.
두원공과대학교 파주캠퍼스는 2008년 개교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 클러스터(135만 평, 종사자 2만 6천 명)의 기술인력 수요를 등에 업고 들어온 산업 밀착형 모델로, 파주읍 봉암리에 자리잡았다.
서영대학교 파주캠퍼스는 2013년 개교했다. 광주 본교를 둔 사립 전문대가 학령인구 감소의 파고를 피해 수도권으로 이전한 사례로, 월롱면 능산리에 위치한다.
2026년 현재 파주에는 이 세 대학이 있다. 인구 50만 도시치고는 초라한 숫자다.
웅지세무대학 개교와 파주시장의 죽음
송달용 시장 —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1996년, 서울세무학원을 운영하던 송상엽 원장이 파주시청 문을 두드렸다. 세무대학 설립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1·2대 민선 파주시장을 지낸 송달용(재임 1996~2002)은 훗날 회고록에서 “파주의 숙원사업인 대학 설립을 스스로 찾아와 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즉각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첫 번째 후보지인 탄현면 축현리는 관할 101여단장이 구두로는 “가능하다”고 했다가 공문으로는 부동의(不同意) 통보를 보내왔다. 송달용 시장은 여단장을 직접 찾아가 항의했고, 이미 군부대 동의를 받아 공장이 들어선 탄현면 금승리의 기존 공장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부지를 바꿨다. 결과는 즉시 동의였다.
부지 확보 후에도 일은 산더미였다. 협소한 진입로 확장, 교량 설치, 가로수 식재까지 시장이 직접 나서 해결했다. 송달용 시장은 완공을 보지 못하고 퇴직했으나, 파주 역사상 최초의 대학 웅지세무대학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준원 시장 — 한강에서의 비극
2004년 3월 웅지세무대학이 문을 열었다. 당시 파주시장은 이준원(3대, 재임 2002~2004)이었다.
그러나 개교 석 달 후인 2004년 6월 4일, 이준원 시장이 서울 반포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뛰어내렸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시장은 웅지세무대학 설립 과정에서 건물 사용승인을 앞당겨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운전기사(당시 31세)의 죽음이었다. 시장이 차에서 내려 난간으로 달려가자 그는 뒤따라 강물로 뛰어들었다. 시장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 모두 숨졌다. 이듬해 법원은 운전기사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설립자 송상엽의 말로
창업자도 끝이 좋지 않았다. 2015년 대법원은 2008~2013년 교비 횡령 혐의로 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했다. 2019년 8월에는 교비 수십억 원 횡령과 교수 채용 대가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이화여대 파주캠퍼스 무산과 시장의 책임

2000년대 중반, 파주에 다시 대학 유치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엔 이화여대였다.
월롱면 영태리 캠프에드워즈(반환 예정 미군 공여지, 30만㎡)에 이화여대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류화선 파주시장(4대, 재임 2006~2010)이었다. 2006년 10월 11일, 파주시·이화여대·경기도가 대학 유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총 대상 부지 약 85만㎡. 파주 시민들은 흥분했고 영태리 일대 땅값이 치솟았다.
그러나 2010년 2월 공여지 감정평가 결과가 나왔다. 이대 측은 652억 원, 국방부 측은 1,750억 원으로 1,100억 원의 차이가 발생했다. 같은 시기 사유지 소유자 170여 명 중 36명이 강제수용에 반발해 소송을 냈고, 소송이 장기화되는 동안 이대는 토지 가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1년 2월, 이대 이사회는 파주캠퍼스 포기를 결정했다. 그해 8월 공식 포기 선언. 5년에 걸친 파주의 꿈은 이렇게 무너졌다.
파주시(이인재 시장, 2010~2014년)는 이화여대를 상대로 15억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2012년 6월 패소했다. 법원은 MOU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영태리 땅값은 폭락했고, 이대 유치를 믿고 땅을 샀던 주민들만 피해를 고스란히 입었다.
이 사건 이후 파주시는 사업 유치 방식을 ‘자유제안 공모제’로 전환했다. 시가 일방적으로 부지를 정하고 사업자를 끌어오는 방식에서, 사업자가 조건을 제안하고 시가 심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국민대학교 광탄캠퍼스의 조용한 실패

이화여대 유치가 한창 추진되던 같은 시기, 파주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드라마가 조용히 펼쳐지고 있었다. 광탄면 신산리의 캠프스탠턴 — 2007년 미군이 반환한 약 7만 1천 평의 부지였다.
2007년 1월 15일, 국민대학교와 파주시(유화선 시장,재임 2006~2010) 는 MOU를 체결했다. 캠프스탠턴 부지와 인근 사유지를 합쳐 약 100만㎡(30만 평)에 국제화 특성화 글로벌캠퍼스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교양과정·자연과학계열·국제화특성화 과정을 운영하고, 외국인학교(초·중·고)까지 설립한다는 청사진도 그려졌다. 목표는 2013년 개교.
이화여대와 거의 판박이였다. 화려한 MOU, 부풀어 오르는 기대, 그리고 조용한 포기.
2010년 2월, 국민대학교는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이유는 단 한 줄 — “건립 부지의 위치와 사업성 문제”. 같은 해 이화여대가 국방부 감정가에 막혀 흔들리던 바로 그 시기였다. 파주는 동쪽(광탄)과 서쪽(월롱) 두 곳에서 동시에 대학 유치 실패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캠프스탠턴은 10년 넘게 방치됐다. 2019년에야 GS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대학 부지의 꿈은 일반산업단지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제조·물류시설과 공동주택 약 1,100세대, 사업비 약 3조 4천억원 규모로 2028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4년 9월 산업단지계획 승인 신청이 제출됐다.
대학이 들어설 뻔했던 땅에 물류단지와 아파트가 들어선다. 그것이 캠프스탠턴의 현재다.
폴리텍대학의 용두사미 유치

이화여대의 빈자리에서 파주시가 다음으로 붙잡은 것은 한국폴리텍대학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의 국립 직업능력개발대학으로, 전국 8개 대학 34개 캠퍼스를 운영하는 기관이다.
강원(인구 154만)에 폴리텍 캠퍼스가 3개, 경남(332만)에 4개 있는 반면, 경기북부(약 320만 명)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형평성의 공백이 곧 유치의 근거였다.
2013년 연구 용역에서 캠프에드워즈가 최적지로 분석됐고, 2015년 4월 파주시·고양시 경쟁 공모에서 파주시가 선정됐다. 부지는 파주시가 제공하고 건축비는 국비 70%·도비 30%로 분담하는 구조였다. 2015년 12월 캠프에드워즈 내 4만 3,960㎡를 국방부와 매매계약 체결, 2017년 1월 7일 소유권 이전을 완료했다(시비 167억 원).
그러나 이후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2016년 6월 설계 착수 직후 폴리텍대학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구조조정이 시작되며 2년간 사업이 멈췄다. 재개된 뒤에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을 초과하며 지방재정투자심사 의무화에 걸렸다. 2021년 8월 조건부 승인, 2023년 조달청 설계검토를 거쳤으나 2026년 현재 파주캠퍼스는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부지를 사들인 지 10년이 넘도록.
파주시가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할 대학 유치
반세기에 걸친 실패의 역사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2025년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5극 3특’ 지방분권을 국정 핵심 기조로 내걸고,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에 2026년 예산만 2조 1천억 원을 배정했다. 수도권이면서도 대학 불모지인 경기북부에는 규제 재검토의 명분이 생긴 셈이다.
이화여대 사태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MOU의 한계다. 앞으로의 대학 유치에선 단계별 법적 의무를 명시한 협약서, 이행 보증금, 위약 조항을 반드시 못 박아야 한다.
유치 대상도 가려야 한다. 두원공과대학교는 LG디스플레이 클러스터라는 명확한 수요처 덕분에 살아남고 있다. 파주의 반도체·출판·인쇄·물류 산업과 실질적으로 연계된 특성화 모델이 답이다.
당장 발등의 불도 있다. 167억 원의 시 예산이 투입된 폴리텍대학 부지 위에 10년째 빈 하늘만 보고 있다. 고용노동부·경기도와의 협의를 전면 재개해 개교 일정을 못 박는 것이 2026년 파주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비리의 고리를 제도적으로 끊어야 한다. 웅지세무대학 설립 과정의 금품 수수와 이준원 시장의 비극은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감시 체계 부재의 문제였다. 개교 승인, 사용검사, 보조금 지급 등 모든 단계에 외부 감사와 시민 모니터링 체계를 법제화해야 한다.
파주라는 배는 아직 항구를 찾고 있다
2017년, 송달용 전 시장( 2024.12.3일 昨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주에 왜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발생하는지, 파주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분노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파주라는 큰 배가 목적지의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에 선장 없이 불안하게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주시장 장기 부재 상황을 빗댄 말이었지만, 이 말은 대학 유치의 역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번번이 방향을 잃었던 파주의 대학 유치.
웅지세무대학 — 파주 최초의 대학, 그러나 개교 석 달 만에 비리로 시장을 잃었다.
국민대 광탄캠퍼스 — MOU 체결 3년 만에 “사업성 문제”로 조용히 사라졌다.
이화여대 파주캠퍼스 — 5년의 노력, MOU 한 장, 그리고 패소.
폴리텍대학 — 공모 선정 10년, 부지 매입 후 개교 無.
2026년, 새로운 시대에 파주시는 다시 “대학 유치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했다. 흑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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