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위키, 22주년을 맞으며-이기상
파주이야기에서 파주위키까지 — 오늘의 파주를 기록한 22년 세월

파주 지역의 역사와 현재를 기록해 온 파주위키가 2004년 6월 21일 파주이야기로 서비스를 시작한 지 22주년을 맞았다. 2004년 개인 홈페이지로 출발해 오늘의 파주를 기록하는 지식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파주이야기의 시작
파주위키의 뿌리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직생활 중에 지역 문화재에 대한 답사기를 쓰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 홈페이지에 게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인터넷에서 파주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출처와 내용이 불분명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파주위키는 이것이 인터넷의 문제가 아니라 참고하는 기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2004년 6월 21일, 도메인 등록과 함께 웹호스팅 서비스로 pajuiyagi.net 웹사이트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2008년 11월 25일에는 종전 도메인을 pajuiyagi.com으로 변경했다.최 상위 도메인의 .net은 포털이나 네트워크 분야에서 주로 이용되는 도메인이었기 때문이다.
파주위키는 pajuiyagi.net의 웹서비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웨이백 머신(Wayback Machine) 에서 기록을 발견하여 2004년6월 21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주위키의 탄생
2020년 2월, 파주시 중앙도서관이 주관한 ‘파주 기록 시민네트워크’ 회의에서 파주위키는 ‘위키백과’ 방식의 지역 역사 기록을 제안했다. 시민이 참여해 지역의 역사를 공개적으로 기록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역사기록의 정책 방향과 예산, 서버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결국 “위키 방식의 도입은 예산상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공공기관이 지역 역사를 위키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기록 관리 차원에서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동안 운영해 온 파주이야기를 발전시켜, 파주의 기록도 위키백과 사전처럼 주제별로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효율적인 역사기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고 개인이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검토했다. 이에 저렴한 학습용 서버를 도입하고 무료인 오픈소스를 설치하여 파주위키를 시작했다. 2020년 6월 30일 pajuwiki.com 도메인을 등록하고 그해 말까지 시험 운영을 거쳐 2021년 1월 1일 정식 오픈했다.
본래 위키는 일반인이 참여하는 개방형 시스템이지만 파주위키가 시스템 유지와 참여자 기록 관리 기술이 부족해 편집위원 중심으로 운영했다.
라즈베리파이에서 미니PC까지 — 진화하는 시스템
파주위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력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0년 7월 7일 도쿠위키 ‘Hogfather’ 버전, 라즈베리파이 4 서버, 저장용량 100GB로 시작했다. 2022년 3월 25일부터 미디어위키(MediaWiki)로 전환하고 저장용량을 1TB로 늘렸으며, 도메인을 paju.wiki로 일원화했다. 현재 서버는 총 5개로, 사무실과 주택에 분산 운영하고 있다.
위키 서버의 확장
파주위키는 지역의 역사나 명소 사진 자료를 저작권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2021년 9월 사진자료 전용 포토파주위키(photo.paju.wiki, 500GB, PIWIGO)를 구축했다. 임진각 관광지 사진의 경우 현재 3만 8천에서 4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파주 작가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파주작가냉장고(fridge.paju.wiki)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파주 지역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현재 10명의 작가와 북티즌 독서토론회 독후감을 운영 중이다. ‘파주작가’는 거주·출생지와 관계없이 파주를 소재로 창작하는 모든 작가를 포함한다.
그동안 무엇을 기록했나
파주위키가 22년간 축적해 온 기록들 중에는 단순한 정보 정리를 넘어 새로운 해석과 발굴, 현장 기록까지 다양한 층위가 있다.
민통선 너머의 유산부터 기록했다. 임진강 이북 민통선 지역은 군부대 출입 승인이 있어야 민간인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파주위키 초기에는 허준 묘와 덕진산성 등 접근이 제한된 민통선 지역의 문화재를 직접 답사하여 소개했다.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조차 알기 어려운 유산들이었다.
역사적 통설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임진강으로 피난할 때 율곡 이이의 화석정을 불태워 강을 밝혔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러나 파주위키는 이 ‘화석정 소각설’을 지리적·역사적 근거를 들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실제로 불탄 것은 화석정이 아니라 임진강 나루터의 서문 승청(承廳)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임진서문 승청 소각설’을 주장했다.
2016년에는 故 송달용 전 파주시장이 발간한 회고록 『나는 파주인이다』 400여 페이지 전체를 파주이야기에 연재했다. 한 지역 행정가의 육성 기록을 온전히 보존하고 공유한 작업이었다.

한국전쟁의 흔적도 추적했다. 미디어위키로 전환한 이후, 한국전쟁 당시 임진강에 놓였던 자유다리의 정식 구간을 문헌과 현장 조사를 통해 특정했다. 나아가 홍커부교를 비롯한 작전 교량 6개를 발굴하여 소개함으로써 전쟁사의 공백을 채웠다.
현재 진행형의 기록은 때로 마찰을 낳기도 했다. 최근 운정 신도시 인근에 조성 중인 메디컬 클러스터의 추진 과정을 기록하였는데, 사업시행사 관계자로부터 “사업 심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당 내용의 삭제를 요청받았다. 파주시청 사업 관계관 역시 파주위키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기록이 압력의 대상이 된 사례다.
의회를 향한 직접적인 발언도 있었다. 파주시의회가 청소 용역 문제와 관련해 의회의 역할을 지키기 위한 ‘의회 민주주의 수호 결의안’을 부결시키자, 파주위키는 “파주시의회는 죽었다”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22년의 여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파주이야기를 비롯해 브리핑 파주위키, 메모리 파주위키, 파주가자 등 여러 사이트가 차례로 운영되었다 문을 닫거나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는 서버 운영 기술이 부족했던 시절의 시행착오이고, 실패한 실험들이 쌓여 지금의 파주위키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재 무엇을, 어떻게 기록하는가
파주위키는 지난 역사를 정리하는 것보다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지역사회에서 이슈가 된 사건이라면 처음 발생한 시점의 기록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어떻게 전개됐는지 진행 결과까지 꼼꼼히 추적해 남긴다. 오래된 기록이라고 해서 외면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자료라도 새롭게 발견되거나 다시 분석할 필요가 있다면 연구해 게시한다.
파주위키가 지역 역사기록에 중점을 두는 것은 한반도의 중심지로 다양한 역사의 현장이면서도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기록이 유난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파주의 역동적인 근현대사의 사건도 그것을 꼼꼼히 남긴 기록은 드물다. 파주위키는 기록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믿으며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쌓인 기록이 사회를 더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 그것이 파주위키가 22년의 작업을 이어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22년의 기록, 지속 가능성을 고민할 때
22년을 이어온 파주위키는 전산 전문가가 아닌 취미로 독학한 관리자가 직접 시스템을 유지·관리하고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기록· 편집 작가와 시스템 유지·관리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파주위키는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 수익 모델이나 공공기관 협력 운영, 공공법인체 전환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파주위키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조건이라는 신념으로 22년을 이어왔다. 파주위키가 다음 22년 동안에도 더 단단하게 지속되려면,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시민과 단체가 지속 가능한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될 때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