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이 자체적으로 조성한 자연친화적인 마을이다.

사진 PHOSTO

개요

364번도로 법원도서관 옆 2차선으로 진입하면 행정구역상 법원4리인 초리골이 있다. 초리골 입구부터 계곡 끝 천주교 다산 수도원까지 3.2km 정도이고 계곡의 폭이 70m~150m 밖에 안되는 골짜기 마을이다. 2020년말 현재 98세대에 190여명이 거주하고 단양 우씨가 20%정도 차지한다.

초리골은 다른 마을과 달리 자연환경 보전에 관한 내용을 마을 규약에 명시하고 있어 현재의 자연 친화적인 전원 마을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쾌적한 전원환경으로 카페나 펜션, 캠핑장, 음식점이 성업 중에 있다.

지명유래

항공지도, 카카오맵

초리골의 지명유래는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파주시에서 발간한 <지명유래집>에서는 "초리동", "초릿골"이라 기록되어 있다. 중앙일보의 <강마을산마을>에서는 초리골이 눈의 꼬리처럼 길다고 해서 꼬리의 옛말인 「초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했다.

파주시 <지명유래집> 원문에 " 초리(礁栮)동, 초릿굴은 법원4리 지역으로 마을 주변 산골짜기에 풀이 많이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을 뒷 바위 바닥에 암초버섯이 많이 달려 초이골이라고도 불렸다."라고 기록됐다.

일반적으로 풀(草)일 때는 줄기가 연하고, 대개 한 해를 지내는 초본식물을 말한다. 초리골에 풀이 많아서 '초(草)리골'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다만, 마을 뒷 바위 바닥에 암초 버섯이 많이 달려 있어 '초리골'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암초(暗礁)버섯이라는 용어는 현재 사용되지 않고 석이(石茸)버섯[1]이라고 부르며 항암 및 건위 작용이 우수하며 얼굴 빛을 좋게한다고 알려져 있다.초리골 계곡에는 바위가 많고 주변 산자락에 참나무가 많이 있던 것으로 보아 암초버섯이 많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중앙일보에서 눈꼬리 처럼 길다는 '초리'는 초리골 골짜기가 좁으면서도 3km 이상 길게 형성 되었다는 지형적 특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긴 꼬리 형태는 골짜기 안에서 보이는 전경은 아니다. 장군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아야 긴 골짜기를 제대로 볼 수 있지만 일반인이 눈꼬리 형태로 보기는 쉽지 않다.

'초리골'이라는 지명은 '골짜기 바위에 암초버섯이 많이 자라서 초리골이 되었다'는 것과 '골짜기가 눈꼬리처럼 길어 초리골'이 되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운영

자체 규약 운영

초리골 주민 스스로 청정한 전원마을을 만들기 위해 1992년부터 마을 운영규정을 만들어 지켜오고 있다. 대부분 마을마다 공동으로 처리해야 안건이나 주민간 화합과 경조사 처리를 위한 운영규정을 만든다.

초리골은 다른 마을과는 달리 자연경관을 고려한 규정을 추가한 것이 특색이다. 초리골 마을규정은 전체 본문 12개 조항과 부칙 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있다. 이중 제4조 5항에 '초리골 자연환경 보존' 규정을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특화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자연환경을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면서 자연 환경을 파괴 시키는 행위는 마을 운영위원회 동의를 받도록 했다.

운영위원회 동의를 받아야 할 사항으로는 3,300㎡ 이상 임야를 개발할 경우, 토지와 건물 신축 , 기타 자연환경을 파괴 시킬 우려가 예상되는 행위이다. 아울러 위해한 공장, 축사 등은 신축을 불허 한다고 규정되어있다. 초리골 마을의 '자연환경 보존' 자체 규약은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어 규약대로 운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유지되고 있어 현재 마을에 입주한 공장은 없다.

초리골 협동조합

마을 자체적으로 소득을 개발할 수 있는 파주형 마을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9.11월 <초리골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조합은 2018년 초리골 지역의 사업자 15명이 결성한 공동체로 귀촌민과 원주민이 융합한 자생모임이다.

2020년 겨울에 '눈 내리는 초리골' 겨울축제를 열고 얼음 썰매장, 눈썰매장, 얼음분수축제, 연못 송어낚시, 먹거리 장터를 운영하여 주말에는 1천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기도 한다.

주요 시설 및 볼거리

장군봉

다산 수도원에서 좌측 산길로 오르다 보면 장군바위 전망대가 있고 2백여m를 더 오르면 해발4백m의 장군봉이 있다. 이곳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가면 해발 454m의 비학산을 만날 수 있다.

장군봉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파주지명 유래집>에 '장구터' 또는 '장군터' 마을이 법원3리에 있다는 기록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에서 장군터는 초리골 뒤 장사바위에서 장사가 나와 배나무산에서 말을 타고 내려오다가 적군에게 쫓기게 되었다. 다급한 나머지 칡울(현재 갈곡리, 葛谷里)의 수산에 있는 안장바위에 안장을 두고 워낭골에서 워낭(방울)을 떨어 뜨렸다. 그 후 뒤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굴레방다리에서 굴레 마저 잃어버린 장수가 오능골(법원3리) 뒷산에서 전사하였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라고 한다.

무장공비 비트

1968년 1.21사태시 김신조와 무장공비 30명이 초리골 삼봉산에 은신처(비트)를 만들어 숨어 있다가 우씨 형제들에게 발각된 곳이 있다. 당시 초리골 마을에 살던 우씨 3형제는 나무하러 비학산에 갔다가 무장공비에게 발견됐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3형제는 파출소에 신고하여 무장간첩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 불발로 끝났다. 지금은 무장공비가 은신했던 장소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두무뫼 박물관

두루뫼 박물관은 현대화 물결에 밀려 조상의 손때 묻은 생활용품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 한 설립자 강위수, 김애영 관장이 사십여년간 모아온 민속생활용품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소장품으로는 도자기, 목재용품, 농기구, 타자기, 레코드판 등 원삼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민속생활유물 6,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두루뫼'는 '산이 둘러 있다'는 뜻으로 설립자의 고향인 장단군 장단면 동장리 주산동을 표현 말이다. 장단면은 한국전쟁후 비무장지대가 되어 그곳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 박물관을 설립하게 됐다.

초리골 초계탕

법원리 시가지에서 영업하다가 초리골로 이전 했다. 40여년간 초계탕만으로 장수했고 개업 초기에 4명이 되어야만 판매하기도 했다. 초계탕을 주문하면 메밀전을 서비스로 제공하고 나중에는 메밀국수 메뉴도 추가했다.

초계탕은 쫄깃하고 담백한 닭고기와 아삭하고 싱그러운 채소에 시원한 살얼음 육수가 일품이다. 닭고기, 채소, 살얼음이 무한리필이 되고 여기에 메밀국수 사리까지 서비스로 푸짐하게 나온다. 닭고기는 기름기가 빠져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창업주가 2020.1.20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주변의 소문에 의하면 40여년간 메밀전을 직접 요리하면서 기름 연기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로 지병을 얻었을 거라고 한다.

초리골 황토펜션

뒷산 전나무 배경으로 황토방이 있어 사계절 운치가 있는 펜션이다.오랫동안 배나무와 포도나무 과수원을 운영하다가 과수원 부지 일부에 펜션을 건축했다. 우리땅에서 자란 목재와, 질좋은 천연 황토로 건물을 지었고 공작새와 금계, 미니 토끼 등 작고 아담한 미니 동물원이 있으며 펜션앞 과수원에서 배나무, 포도나 체험도 가능하다. [www.chorigolhwangto.co.kr 홈페이지]

THE 초리골

두루뫼 박물관 인접한 곳에 청정 자연과 어울리는 체험학습장이 있다. 이곳에는 펜션과 유스풀장, 성인풀장, 세미나실, 운동장 등 다양한 체험활동 시설이 되어있다.

이 곳 수영장은 야외수영장이고 깨끗한 시설과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고 특히, 평상에서 각종 요리를 자유롭게 취사할 수 있다. 체험프로그램으로는 개성인삼을 재료로 하는 인삼비누 만들기, 전통 인절미를 만드는 떡매치기, 뻥튀기, 민속놀이 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초리 포레스트

법원리 마을회관 7백여m 상류 삼거리에서 문터골 방향으로 언덕을 오르면 계곡 옆으로 초리포레스트 캠핑촌이 있다. 이곳은 숲으로 둘러싸여 아이들과 4계절의 자연을 맘껏 느낄 수 있으며, 계곡에 있는 민물고기, 도롱뇽과 가재를 만날 수 있다.

캠핑은 물론, 커피, 취사 가능한 계곡,수영장, 카페, 셀프 바베큐 존, 펜션,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다. 넓은 계곡 공간에 캠핑카 3팀, 펜션 1팀, 글램핑 1팀, 텐트 2팀에게 제공하고 여름에는 계곡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다산 수도원

법원4리 마을회관 근처에서 상류로 5백여m 근처에는 민간건축업자가 조성한 예술인 마을이 있으며 장군봉에 오르는 마지막 건물로 천주교 다산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은 주변에 28만평의 전답과 양어장, 가축 사육장이 있어 육체노동이 주는 신선한 의미를 느끼는 '노동피정'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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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1. 석이버섯은 주로 산골짜기 외딴 곳에서 바위에 붙어사는 버섯으로, 마치 검은색 종이를 구겨서 찢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 모양이 귀를 닮아서 한자로 ‘석이(石耳)’라고 적는다. 그러나 허균은 석이를 한자로 ‘석이(石茸)’라고 적었다. ‘이(茸)’의 원래 발음은 무성하다는 뜻의 ‘용’이다. 그러나 버섯을 뜻할 때는 ‘이’라고 읽는다. ‘石耳(석이)’라고 쓰면 자칫 ‘귀’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 ‘풀 초(艹)’를 붙여서 ‘石茸(석이)’로 적기도 했다.